2019년은 저에게 특별한 한해였습니다.
봄과 겨울에 두 번 김윤아 단독공연을 했었지요.
전부터 꼭 작은 극장에서 공연을 해 보고 싶었기 때문에
봄 공연 [ 노래가 슬퍼도 인생은 아름답기를 ] 은
소극장에서 개최했습니다.
작고 아늑한 공간이어서
드럼과 베이스를 제외하고
특별한 어쿠스틱 공연으로 구성했습니다.
여러분께 제 비밀 얘기를 조금 속닥거리기도 좋았지요.
이야기의 일부는 왜 제가 어두운 음악을
계속 만들 수 있는지 설명해줄 수도 있겠네요.
8회의 공연 동안 여러분을 만나고
이상한 이야기와 슬픈 노래를 털어놓으며
저의 불안도 사라지고 행복해졌습니다,
하는 결말이라면 참 좋았을 텐데
빛난다고 느낀 순간만큼
모자람을 느낀 순간도 많은 무대 였습니다.
공연을 음반으로 만들 수 있도록
모든 트랙을 녹음 해야겠다고 결정한 것도
이미 제 빛남과 모자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제가 어디까지 날아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제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궁금했어요.
그리고 모자람과 아쉬움은 저를 더 강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죠.
사라지지 않는 발성장애를 가지고 어떻게 노래해야 하는가,
어떻게 악기로써의 몸을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해
한층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자우림의 리드보컬일 때와
솔로 김윤아일 때
목소리를 사용하는 방법, 사운드를 구성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오랜만에 김윤아의 음악을, 그것도 서로의 숨소리가 들리는
소극장에서 연주해 보니 저의 현주소가 매섭게 와 닿았지요.
2019년 여름은 평온했습니다.
평범하게 지내며 평범하게 곡들을 만들었고
여행을 다니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겨울 공연을 준비했지요.
저 자신이 지루한 공연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매번 공연 대본을 쓸 때
어떤 흐름을 만들고 어떤 이야기로 채울지 무척 고민합니다.
그리고 이전에 했던 공연보다 모든 면에서 더 발전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2019년 겨울에 무대에 올렸던
[ 사랑의 형태 ] 는
제가 평생 해 온 공연들 중에
이야기를 가장 잘 만들었다고 자부하는 공연입니다.
여러분과 음악과 책과 영화에 대해,
인생과 사랑에 대해 얘기하고 노래했던 붉게 타오르던 무대.
봄 공연과는 대조적으로 풀 밴드와 함께 하는
화려한 공연을 준비했지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팬데믹이 시작되었습니다.
2019년의 두 공연을 묶어 2020년 봄에
라이브앨범으로 들려드리고 싶었지만
저도 자우림도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세상이 두려움과 절망에 뒤덮이는 것을 목도하며
이 앨범은 천천히 여러분과 만나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2020년에는 자우림으로서 여러분의 손을 잡아드리고 싶었어요.
김윤아 라이브 앨범이 세상의 빛을 보기에 적당할 때를
쭉 기다려왔습니다.
팬데믹의 광풍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며
자우림이 열 한 번 째 정규앨범을 발표하고
스물다섯 생일을 성대하게 축하하는 동안,
때때로
선선한 저녁 산책길에서
새벽 작업실에서
차들이 엉금엉금 기어가는 도로 위에서
대체로 온전히 집중해서
가끔은 건성으로
때로는 술을 마시며
여덟 번의 봄 공연과 네 번의 겨울 공연 전곡을
듣고 또 들으며 선곡했습니다.
추운 겨울 밤 앙드레와 산책하며
시린 손을 쥐었다 펴며 메모장에
트랙들의 좋은 점과 아쉬운 점들을 적어 두었습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2023년 봄에
여러분들께 김윤아 라이브앨범 ‘ 행복한 사랑은 없네 ’를
들려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라이브 앨범의 믹싱 작업은
2001년 자우림의 True Live 앨범 이후
정말 오랜만이어서 고됐지만 몹시 즐거웠습니다.
라이브 사운드 믹싱은 스튜디오 앨범 믹싱과는 완전히 달라서
예를 들면 아주 적은 양의 앰비언스 변화로도
곡의 성격이 완전히 바뀌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홀에서 공연을 감상하고 계신지 설정하고 상상하며
현장감과 깔끔함을 어떤 비율로 조율할지
악기들은 어느 위치에서 어떻게 연주되게 할지
실제 공연장의 어두웠던 기분을 전달할지
앨범으로서 화사하게 만들어 들려드릴지
스튜디오 앨범을 만들 때와는 다른 고민들을 하며
만들어 나가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녹음된 상태를 수정하거나 재녹음 하지 않고
믹싱과 마스터링만으로 완성했습니다.
앨범이 나오면
다시 혼자 무대에서 여러분을 맞게 되겠네요.
자우림 안에서 행복한 동안에도 순간 순간
혼자 서 있는 무대가 그리웠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어색했던 혼자인 무대가요.
2023년의 봄 공연 [ 행복한 사랑은 없네 ] 는
2019년의 공연들보다 더 기억에 남는 무대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년 봄에는
최선을 다 해 아름답고 슬픈 앨범을 완성해
제가 어디까지 날아갈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계속 날갯짓하고 싶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