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연 Ep [신기루]
겨울이면,
드라이아이스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다.
너무 차가워서 만지기 힘들 것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다.
온몸이 꽁꽁 얼어서 쥐어짜 낸 입김 없인 녹일 수 없는 날들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사람이고 싶었다.
그러다가도 미칠듯한 추위에 차라리 타버리고 싶었던 적도 있다.
조금 타버린 적도 있다.
하지만 다 타버리기 전에 봄이 왔다.
나는 끝내 죽지 않았다.
겨울은 참 힘들다.
나는 겨울을 싫어하는 사람일까,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일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봄이 온다.
1. 밤
사람은 꽃과 같아요. 뿌리에서 줄기로, 그리고 여러 개의 봉오리들.
하나에서 오는 여러 명의 `나`는 너무나도 다릅니다.
아름다운 꽃잎을 가진 봉오리도 있는 반면, 무심코 지나가던 존재에 의해
밝혀 상처 난 봉오리도 있고, 예쁘다고 뜯어가 버려서 죽어버린 봉오리도 있죠.
상처 나고 아픈 봉오리가 많으면 꽃 전체의 아름다움이 망가집니다.
아픈 봉오리는 누구에게나 있어요.
밤이 되면 저는 가장 무서운 나를 피해 숨어야 했고, 숨죽여야 했어요.
멀쩡한 `나`들은 괴물에게서 아무리 숨어봐야 늘 들켰고,
마지막은 결국 너무 많이 써서 닳고 닳은 칼을 뽑을 수밖에 없었어요.
남은 봉오리는 지키고 싶었거든요.
저는 이 미친 괴물을 죽일 수 있을까요?
죽이긴 힘들겠지만 아마도 저도 죽진 않을 거예요.
2. 아무 이유
내가 울었던 날
내가 숨 쉬었던 날
내가 죽었던 날
그다음 내일
3. 유채 동백
깨고 싶지 않은 꿈
떠올릴수록 멀어지는 존재
남쪽의 커다란 섬에 찾아가면 1월인 겨울에도 피어나는 꽃들이 있어요.
정체불명의 존재가 내게 주는 커다란 꽃다발 같은 유채와
피처럼 붉어서 따뜻할 것 같은 붉은 동백인데요,
눈 속에 숨어있다 추위를 이겨내고 피는 유채와 동백이 기특합니다.
저는 누군가의 유채 동백이고 싶어요.
아니면 제게 유채 동백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에겐 유채와 동백 같은 존재가 있나요?
아니면 유채와 동백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존재가 있으신가요?
여러분은 꿈과 환상을 믿으시나요?
유채꽃 위와 동백꽃 사이에 어울릴 존재는 누군가요?
저는 환상과 상상으로 떠올리려고요.
4. 신기루
바다 위나 사막에서 빛이 밀도가 다른 공기층을 통과하면서 굴절하여 생기는 현상.
엉뚱한 곳에 물이 있는 것처럼 보이거나, 수평선 너머의 불빛이 보이는 것.
구원, 희망, 환상 그리고 거짓말
5. 꽃
걱정하지 마 꽃은 피어날 거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