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산 [안녕하세요, 까치산입니다.]
새로운 출발선에서 쏘아 올려진 삼총사의 세레나데
모든 것은 말 그대로 ‘시작’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의 등장과 함께 다채롭게 요동치던 대중문화를 자연스레 흡수하고 이를 음악적 자양분의 '시작'으로 삼은 멤버 각자의 유년 시절이 까치산이라는 밴드의 시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앨범 제목에서부터 이미 눈치챘겠지만, 이번 정규 1집 [안녕하세요, 까치산입니다.]는 단어 그대로 밴드의 시작을 알리며 청자를 향해 건네는 허물 없는 첫인사와도 같은 작품이다.
앞서 언급했듯, 까치산의 동갑내기 3인방 김진호, 최선용, 그리고 한태인은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를 아우르는 밴드 음악과 애니메이션 주제가 등을 통해 음악에 대한 흥미와 애정을 쌓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의 기억은 각자 다른 장르와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던 서로의 교집합이었고, 이는 곧 작업실을 공유하는 친구 사이에서 까치산이라는 밴드로 다시 한번 뭉칠 수 있게 해준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다.
그렇다 보니 이들의 지난 이력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기존의 활동과는 사뭇 다른 음악에 ‘같은 사람이 맞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앨범을 통해 까치산은 그동안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애써 제쳐두었던 것들, 말하자면 지난 시절 어딘가에 두고 올 수밖에 없었던 초심에 대해 노래하고 있는 까닭이다. 물론 이러한 방향성이 누군가에게는 시대착오적이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도리어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두고 로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마치 세상에 나와 처음 눈을 뜬 갓난아이의 울음소리처럼 파릇파릇한 멤버들의 모습이 익숙지 않다면 오히려 창작자의 의도와 정확히 부합하는 감상을 이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까치산은 많은 대중음악에서 레트로 요소를 차용하는 획일화된 문법이나 클리셰적인 접근법을 애매하게 우회하기보다 정면으로 마주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주제는 물론이거니와 작품의 형식, 사운드, 그리고 시각적인 부분까지를 아우르는 앨범의 모든 요소는 철저하게 2000년대를 기준으로 설계되었다. 삭막하고 골치 아픈 현실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낭만 하나만으로 가득했던 그 시절 밴드 음악의 질감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은 물론, 싱글 단위로 빠르게 흘러가는 음악 시장을 역행하는 정규 단위 데뷔 또한 “뮤지션이라면 당연히 정규 앨범이지!” 같은 예스러운 고집에서 비롯되었다.
여담이지만, 까치산이라는 팀명 또한 밴드가 처음 결성된 작업실의 주소지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이제는 몇 남지 않은 부산, 대구 등의 로컬씬을 제외하면 지역 기반 활동의 명맥이 끊겨버린 2023년에 밴드의 시작을 기리기 위해 대놓고 출신지를 강조하는 네이밍 센스는 구수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 더군다나 빛바랜 듯한 앨범 커버, 자글자글한 뮤직비디오에서까지 ‘그때 그 시절’을 향한 애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만큼, 음악 안팎으로 이들이 전하고자 하는 진심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진심’이야 말로 까치산의 음악을 단순히 ‘2000년대 복각판’이라 치부할 수 없는 증거이자, 종래의 레트로 열풍을 감상의 잣대로 삼을 수 없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그때 그 시절’은 향유한 적 없는 과거를 향한 실체 없는 동경이 아니라, 이제는 서른을 훌쩍 넘긴 동갑내기 친구들이 온몸으로 통과해온 추억에 뿌리를 내려 생명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까치산의 결성 계기, 그리고 이들이 까치산으로서 전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은 지극히 사적인 동기에서부터 시작된 것들이었다. 원인 모를 벅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어찌할 바를 몰랐던 어린 날의 뜨거운 감정들, 그 ‘지극히 사적인 기억’에서부터 발화된 까치산의 음악은 결국 범람하는 복고 시장 속에서도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까치산스러운’ 차별점을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까치산의 음악은 사랑으로 귀결된다. 무려 열 트랙에 걸쳐, 있는 힘껏 “모든 것은 사랑”이라 외치는 이들의 음악은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혹은 시간과 기억 같은 추상적인 대상이든, 결국 2023년의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을 향한 진심 어린 헌사이자 더할 나위 없는 세레나데인 셈이다. 어찌 보면 클리셰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이라는 주제조차도 뻔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에서다. 기대는 충족하되 예상은 빗나가도록. 이들이 자신 있게 클리셰 속으로 몸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이다.
물론 까치산은 결코 과거에만 머물지 않을 예정이다. 음악을 통해 지난 시간을 반추하는 과정을 여행에 빗대어 보자면, 이들은 이제 막 긴 여정의 반환점을 돌아 씩씩하게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는 중이니까. 돌아옴으로써 완성되는 것이 여행이듯, 까치산 또한 언젠가는 음악을 멈추고 현실로 돌아와 지금을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여행지에서의 행복한 기억들이 내일 아침 등굣길과 출근길을 견딜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주는 것처럼, 멤버 각자의 수많은 ‘시작’들이야 말로 앞으로의 행보를 위한 마르지 않는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까치산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한번 출발선에 나란히 선 삼총사의 도움닫기가 유독 머뭇거림 없이 힘차 보이는 것도 지금껏 줄곧 앞을 향해 빛나고 있던 이들의 시선 덕분이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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