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청만선생님 말씀
타악연주자로서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동을 하던 고석진 제자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타악기 연주 솔로 음반을 발표하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한국음악의 뿌리가 전통 타악에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홀로 갈고 닦았을 시간이 정녕 쉽지는 않았을 터인데,
그 노력과 정성을 담아낸 수고에 칭찬과 격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듣고 연구하여 한국음악이 더욱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 국가지정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고법 예능보유자 김청만
# 평론
고석진의 “고고(古鼓)” - 김명옥(고등과학원 위촉연구원)
고석진의 음반이 발매되었다.
앨범의 이름은 “고고”. 디스코의 ‘고고(Go-go)’를 떠오르게 하지만 옛 ‘고(古)’에 북 ‘고(鼓)’를 써서 “고고(古鼓)”, 옛 북이라는 의미이다.
의문이 들었다. 가장 세련된 창작 타악을 연주하는 사람이 ‘옛 북’이라는 제목이라니.
그렇지만 이내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의미를.
고석진의 소리는 세련되다. 날렵하다. 정교하다. 호리호리한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섬세하지만 강한 파워와 세련됨이 그의 소리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 앨범은 새로운 곳으로 나를 이끈다. 원초적인 울림과 파동이 내면의 원시성을 깨운다. 목마름이다. 나는 목이 말랐던 것 같다. 나는 사람들과 온기를 나누고, 맑은 숨을 들이쉬고, 잠을 푹 자고, 맑은 물을 콸콸 마시고 싶었던 것 같다. 나도 모르고 있던 나의 이 목마름을 “고고(古鼓)”가 일깨운다. 그리고 “고고(古鼓)”는 수사적이지 않은 생동과 발랄함으로 나의 원시적 본능을 춤추게 한다. 마른 목을 적시고 무거웠던 몸을 일으켜 춤추게 한다.
물론 나는 실제가 아닌 의식 속에서 춤을 춘다. 그의 부지런한 타점의 행간을 따라가느라 가만히 앉아 있어도 분주하다. 이것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고석진의 타점이다. 날렵하고 정교하지만 자주 익살스럽고 천진하다. 한편 이 앨범을 채우고 있는 항아리와 젬베, 북, 장구와 같이 오래고 익숙한 악기들은 푸근하고 깊다. 할머니의 항아리나 옛 소리들을 떠오르게 하는 정감있는 악기들이다. 평범하다. 그런데 이 악기들의 음색이 그의 손길을 거쳐 새롭게 느껴진다. 익숙함과 새로움이 어떻게 이처럼 공존할 수 있을까? “고고(古鼓)”를 들으며 새삼 다시 오묘한 감정에 빠져든다.
이 앨범을 듣고 천진함 속에 맺힌 진중함에 놀랐고 슬펐다. 깊음과 날아갈 듯한 가벼움의 공존이다. 여기서 고석진이라는 한 명의 예술가가 시간을 지나 성숙하고 발효되는 모습을 본다. 청자(聽者)로서는 참 반갑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듣는 이에게는 감상이 한 움큼 더 즐거워졌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내가 알 길이 없는 지나간 그 시간들이 한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생각하면 괜스레 서글프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춤을 추기로 했다. 여전히 세련되고 바지런한 그의 타점들을 따라가며 동굴같이 컴컴하고 깊은 의식 속을 함께 헤엄친다. 귀의 즐거움과 마음의 울림. 언뜻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기쁨이 함께 한다. 오랜 것(악기)을 오래 보고, 또 새롭게 보는 그의 노력이 조화되어 나의 오감을 즐겁게 한다. 앨범의 음악 속에서 중절모를 쓰고 점잖게 또는 익살스러운 미소로 무대에 오르는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가 지나고 있고 또 나아가는 이 길을 앞으로도 즐겁게 함께 하고 싶다.
01 Sound drop
크기가 다른 항아리 속에 있는 물을 손가락으로 떨어뜨리고 손바닥으로 친다.
그 소리는 항아리 속 공간을 울리고 퍼져나간다.
무장단의 자연스러운 호흡을 실었다.
02 대북 - The biggest Drum
북이 울린다. 큰 북이 울린다.
가죽을 두드리고, 나무를 두드리고, 쇠를 두드리고...
나를 울리고, 너를 울리고, 세상을 울린다.
03 장구 - Changgu
하늘에서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다.
바닥에서 떨어진 빗방울이 튀어 오른다.
빗방울이 소리가 되고 장단이 되어 춤을 춘다.
04 Resonance
크기가 다른 항아리 속에 있는 물, 그 물 위에 바가지.
물과 바가지, 항아리는 손가락, 손바닥, 채(마림바, 징)를 통해 소리가 되고 장단이 된다.
비어 있는 항아리 물로 채워진 항아리, 비움과 채움의 장단 가락을 노래한다.
05 모듬북 2 - Drum with a different sound Ⅱ
모양과 크기가 다른 5개의 북, 저마다의 소리를 갖고 있다.
그 다섯가지 소리가 만나 하늘이 되고 땅이 되고, 비가 되고 천둥이 되고,
그리고 사람이 된다.
06 젬베 - Jembei
영남 사물놀이 가락이 젬베를 만나,
전통 장단 가락이 새로운 장단 가락으로 태어난다.
07 모듬북 1 - Drum with a different sound Ⅰ
저마다의 소리를 갖고 있는 북.
북소리가 북소리를 만나 사계절이 펼쳐진다.
따뜻한 봄이, 뜨거운 태양의 여름이, 맑고 푸른 하늘의 가을, 그리고 차갑게 얼어붙은 겨울.
인간의 희노애락과 같은 사계절의 변화를 멋스럽게 두드려 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