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의 앨범 속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계속해서 바뀐다. 나는 그것을 ‘좋은 레코드를 듣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2년 전 코스모스 슈퍼스타의 데뷔 EP [Eternity Without Promises]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해변 위에서 발가락을 간지럽히는 모래와 파도처럼 파슬거리는 신시사이저, 그리고 저 높이까지 파란 광선을 쏘아 보내는 듯한 목소리가 넘실대는 EP 속에서, 어느 날은 “Night Routine”의 가사에 사로잡혔다.
파란색의 보컬에 불현듯 짙은 검푸른색이 덮인 듯한 목소리로 ‘지겨워요 난 이미 / 밤에겐 질렸어요’라고 노래하는 순간, 오버더빙된 목소리의 프리즘이 이불이란 전쟁터와 목을 조이는 불면을 투사하는 순간, 지긋지긋한 권태의 고통과 살짝만 투정을 부려 보고 싶은 귀여운 마음이 자장가와 80년대 신스팝 사이 어딘가의 청각적 공간을 통과하며 흩뿌려지는 순간. 그러한 순간들은 나 역시 겪었던 무기력과 지연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어루만지는 듯했다. 씁쓸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달콤하기도 한 촉감으로.
2. “Extra”를 처음 들었던 건 지난 5월 있었던 코스모스 슈퍼스타의 공연에서였다. 신곡의 첫인상은 (특히 후렴구에서) 이전 곡들보다 훨씬 더 감상적으로 다가오는 멜로디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응어리지듯이 잔잔한 사운드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었다. 새로운 곡을 처음으로 접한다는 흥분과 곡에 대한 분석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뒤엉키는 바람에, 그때는 “Extra”가 ‘끝’을 직시하고 있던 시선에 대해 미처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Night Routine”이 그리는 지연은 우울하고 답답하지만, 동시에 꿈속에서 농담을 던지는 듯한 기이한 유쾌함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그러한 지연은 노래 속에서 언제까지고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늘어졌다. 그것은 비단 “Night Routine”만의 특징은 아니었다. 코스모스 슈퍼스타는 신스팝과 드림 팝의 문법을 빌려 흐르고 있는 시간의 한 부분을 붙잡아 기나긴 영원으로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었으니까. 그것은 저 먼 우주 너머로 별싸라기를 흘리는 듯한 신시사이저의 협주에서도, 몇 번이나 약속을, 다짐을, 맹세의 말들을 하고(“Teenager”) 아주 오랜 뒤의 여름에서 여전히 잘 놀고 있는 우리들(“70년동안의 여름”)을 그리는 목소리에서도 느낄 수 있는 그만의 특기였다.
“Extra”에서 그는 더 이상 계속해서 늘어지는 지연 속에 머무르거나, 그것을 농담 같은 쓸쓸한 유쾌함으로 덮지 않는다. ‘일기장의 마지막 페이지’, ‘영화를 끝까지 보지 않는 습관’, ‘절대 풀어지지 않는 전망대의 슬픈 약속’들은, “Night Routine”에서의 잠투정 섞인 볼멘소리 같은 귀여움과 몽롱하게 빛나는 전자음 대신 보다 묵직하고 실체감을 지닌 슬픔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들려온다. 마치 다가오는 끝을 예감하고 있는 것처럼, 전자음들은 이전처럼 뛰노는 대신 정적과 파찰 사이에서 자신의 소리를 묵묵히 쌓아 올린다. 할 수 없이, 어떻게든 이것을 끝내야 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이 소리들은 믿고 있는 것일까.
3. 하지만 [Eternity Without Promises]를 듣던 시절에도, 나는 코스모스 슈퍼스타가 노래가 끝날 거라는 것을, 시간이 더 이상 붙잡히지 않을 거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마냥 따뜻하기만 한 것이 아닌 애정이 있다. 변하고 스러지는 것에 대해서(혹은 의해서) 분노하고 힘을 잃으면서도, 끝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들려줄 수 있는 종류의 애정. 그 생각은 “Extra”를 듣는 지금도 변하지 않는다.
‘이미 슬픈 결말처럼 보이는 일이 일어난 다음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가야 해.’ 코스모스 슈퍼스타가 조엘(Joel)이라는 이름으로 보내고 있는 믹스테이프/메일링 서비스인 『Joelplaying』의 스물여섯 번째 메일 맨 위에 뜬 첫 문장을 다시 읽어 본다. 그런 문장을 쓸 수 있는 사람이기에, 그는 ‘우리 나름의 끝이 필요해 / Even we’re just extra’라는 구절을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매일 아침마다 ‘잘잤니 친구들’로 시작하는 안부 트윗을 날릴 수 있을 것이다. 별거 아닌 것처럼 건네지는 가볍지만 단단한 애정을, 나는 “Extra”를 들으면서 다시 느낀다. 그것은 끝의 이후에도 여전히 이어질 것이다.
정구원 | 음악비평가
Albu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