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리스트라는 이름의 퇴화에 대한 변명 - Excuse #1
4차 산업혁명으로 치닫는 이 시기에 코로나19라는 재앙까지 덮쳐서
이제 기타리스트라는 호칭 자체가 구식처럼 느껴진다.
그러면 너는 기타리스트라는 이름으로 빛나본 적이 있는가?라고 질문한다면 아니올시다. 다만,
유명해지지는 못했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오랜 세월 기타에 모든 것을 걸었었다고 말할 수는 있다.
내 짧은 신장에 모델이 되지는 못할지언정 멋진 디자이너가 될 수는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음악에
매진했지만, 어찌 보면 나라는 사람은 어릴 적 그렇게도 혐오하던 '옛 음악만 듣던 꼰대'가 되어버린 것 같다.
나름 최신 빌보드 차트를 어슬렁거려보지만 썩 내 취향의 음악을 찾기란 어렵다. 어느 순간 나도 듣는 음악들만
듣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시대는 어쩌면 이렇게 빨리 변해가는지.. 이제는 내 스타일의 연주조차 진부하게 느껴진다.
발전이 없다. 알껍데기는 깨진지 오래고 현실이라는 무게에 기타리스트라는 이름조차 번거롭다.
다행히 감사하게도 20년 넘게 음악으로 먹고 살아왔지만, 내 음악이 아닌 내 음악 기술로 먹고 살아온 나.
이제는 내 음악이 뭔지에 대한 확신도 잘 서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해보려는 건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뭘 해야 실패도 하고 그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내 이름으로 앨범을 만든 지 6년 만에 먼지 쌓인 책을 털어내듯이 과거에 써두었던 곡들을
무작정 세상 밖으로 꺼내놓기로 결정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미래의 나에 대한 변명인 셈이다. 과거에 내가 이렇게라도
발버둥 쳤으니 그때 가서 아쉬워 말라고.
Excuse #1
앨범 타이틀을 차마 '변명'이라고 하기엔 뭣해서 영어로 있는 척해 본 이번 앨범에는 연주곡 2곡이 담겨 있다.
'끝, 언젠가는' 은 이미 과거에 마스터링까지 제작해두었던 곡인데 발매할 시기를 놓쳐서 이제서야 발매하게 되었다.
느린 템포의 발라드 연주곡이며 누가 듣기에도 편안한 분위기를 주고 있다(고 생각 한다)
'주고 가'는 단순한 기타 리프의 반복을 테마로 여러 기타 소리의 난장을 벌인 어찌 보면 난장판인 곡이다.
Excuse 시리즈는 언제까지 할지,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작업해둔 곡이 꽤 있기에 몇 달마다 한 번씩은 2~3곡씩 묶어서 발매할 예정이다.
누군가가 그랬다. 아티스트는 1차적으로 본인이 만족해야 한다고. 내가 발매했던 음반들에 모두 만족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내가 만든 곡들이 존재하지 않는 완벽에 가깝게 들려 나를 위로해 주는 그런 날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