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the pod bay doors」를 발매하며
신도시
10대 시절부터 밴드음악을 좋아했다. 유행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멋진 음악들이 쉬지 않고 세상에 나왔다. 동경했다. 밴드음악 주변에는, 어딘지 모르게 일그러져 있지만 한편으론 매력적인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재미있는 일들과 슬픈 일들이 뒤섞여 있었다. 이리 모이고 저리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밴드를 해왔다. 시간은 흘렀다. 세상 모든 일이 그저 즐겁기만 할 수는 없으리라. 누군가는 올라갔고 누군가는 내려갔다. 누군가는 남았고, 누군가는 떠났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과거야 어찌 되었든, 우리는 여전히 여기 지금 모여 밴드 활동을 즐긴다. 평소 느끼는 진솔한 감정을 담아내려 노력한다. 좋아해 왔던 음악, 즐겨 듣는 음악, 유행하는 음악 등등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섞어서 멋진 모습으로 빚어내려 애쓴다. 멤버들과 함께 땀 흘려 연습하고, 누군가에게 들려준다. 기본적으로 나의 즐거움과 심신의 건강을 위하여 하는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 듣고 즐겨 준다면 그것 또한 감사한 일이라 생각한다.
더 이상 20대 청춘 로커가 아니다. 각자의 삶을 이리저리 꾸려 나가느라 힘겨운, 전형적인 ‘한남’ 이랄까? 한국 남성. 어딘지 모르게 멸칭으로 불리고 있지만,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우린 그저 한국의 평범한 청장년 남성이다. 가지고 있지 않은 감정을 억지로 꾸며내는 일은 좋지 않다 생각한다. 평소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곡으로 내어놓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한남록’이라며 낮추어 본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홍대 유행 인디를 흉내 내거나, ‘씨티팝’이니 카페 배경음악 같은 것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는 아저씨다.
음악 작업 방식도 많이 바뀌었다. 구식 오프라인 녹음방식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을 수 도 있다. 오히려 상당히 불편하고 미련한 짓일 수도 있다. 미세 박자에 집착하며 테이크를 반복하고(하찮은 육신을 한탄한다. 그냥 컴퓨터로 찍으면 쉽게 해결될 일을...), 마음에 드는 사운드를 잡아내기 위하여 수개월 전부터 셋팅을 반복한다(마치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이미 다 된 것 같은 톤을 손보고 손보고 또 손본다...). 가사 토씨를 바꾸어 가며 입에 잘 붙고 듣기 좋은 노랫 글을 다듬는다(다듬고 부르고, 마음에 안 들어 다시 고치고 다시 부른다. 그리고 다시 마음에 안 든다...). 마이크를 복잡하게 선택하고 악기에 대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좋은 소리를 받으려 애쓴다. 호흡의 떨림과 뉘앙스를 잡아내기 위하여 노래를 수십 번 반복한다. 어찌 보면 대단한 장인 정신인 것만 같지만, 사실은 미련한 고집인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당연히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이렇게 해야 내가 즐거우니까.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는 이 시대에, 빠르고 정확한 음악 작업이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는 그저 구식 방식대로 미련하게 곡을 만들고 녹음하여 발표하기로 하였다. 모든 것은 그 과정에 본질적 의미가 있다 생각한다. 조급하고 못난 마음을 순간순간 붙잡아 가며 서로 웃으려 노력하였다. 마이크 앞에 앉아 이 허튼소리를 낼 수 있게 해준, 이제까지 만났던 모든 사람들과 지나온 순간들에 감사의 마음을 가지려 했다. 제작 과정 중에 발생하는 긴장감이나 짜증, 어긋남, 불확실성 등도 일종의 에너지가 되어 음악에 녹아들 것이라 기대하였다. 그렇게 믿었다.
두 번째 음반에서 총 5곡을 녹음하였다. 스트레이트 하고 깔끔한 펑크록 4곡에 발라드 1곡. 억지 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감정을 드러내려 노력하였다. 그 이상의 설명이 떠오르지 않는다. 평가는 청자의 몫으로 남겨 놓고 싶다. 전반적 소개가 어딘지 모르게 ‘과거에 얽매여 있는 듯’ 하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일’ 이 아닌가 생각한다. 과거 없이 현재는 있을 수 없다. 그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과거를 바라보며 입을 삐죽거릴 것인지, 아니면 미래를 향해 피곤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뗄 것인지 결정하는 일뿐이다. 우리는 천천히 미래로 나아가려 한다.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