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경호 (제이워커)' [멀어져 가는 건]
작곡할 때 창작자는 갈림길에 선다. 만드는 사람 스스로의 만족에 무게를 두고 곡을 쓰는 경우, 그리고 듣는 사람들의 반응에 의미를 두고 음표를 그리는 경우. 여기서 음악가 방경호는 전자인 것 같다. 27년이라는 세월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음악적 신념을 굽혀본 적이 없다. 때때로 장르 변신은 감행했을지언정 ‘내 음악을 하겠다’는 기조는 충실히 지켜왔다. 장르 변신이라는 것도 록과 기타라는 자기 음악의 본질 아래 일렉트로닉을 섞을지 재즈를 건들지 수준이었지, 자신의 음악을 특정 장르에 종속되게 한 적은 없다. 방경호의 음악 장르는 방경호였다.
흔히 예술작품을 둘러싼 대중성과 작품성을 대립 개념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둘은 추구하는 이의 가치관에 따라 떨어져 성립할 수도 더불어 양립할 수도 있다. 때론 그 자체가 사람의 손을 벗어난 우연의 산물일 경우도 있는데, 그래서 의도적으로 두 가지를 모두 갖추도록 하거나 한 가지에만 올인하는 일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방경호는 그 쉽지 않은 일을 ‘작품성’에 방점을 찍어 지난 27년간 짊어지고 왔다. 그는 “음악가는 자기 말을 들어주고 이해할 용의가 있는 사람들 곁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캐롤 킹의 말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지껏 실천해왔다. 그는 서둘지 않았고 포기하지도 않았다. 조금은 슬프고 어둡고 창백하며 쓸쓸한 방경호의 음악은 차갑고 축축한 소리의 고백을 빌어 끊임없이 대중에게 투척됐다.
지난 풀렝스 솔로 앨범 [Unnamed Road] 이후 1년 여만인 올해 1월 초, 방경호는 싱글 ‘혼돈(Chaos)’을 발매했다. 그로부터 4개월 여 뒤엔 또 다른 싱글 ‘네가 원하는 것은’을 내놓았다. 두 곡은 그가 제이워커 시절 때부터 꾸준히 건드려온 록과 일렉트로닉, 신스록의 파동 위에서 구체적으로 뒤척였다. 메시지는 여전히 진지했고 소리는 여전히 습했다. 고집과 장인정신이 느껴질 정도로 두 곡은 플레이되는 내내 자신들의 주인이 방경호라고 부르짖었다. 작가정신과 시대정신을 가진 뮤지션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깊이가 두 곡엔 똑같이 잠들어있었다.
올들어 세 번째 선보이는 싱글 ‘멀어져 가는 건’은 지난 두 곡을 둘러쌌던 일렉트로닉 외피를 걷어낸 알몸의 모던록이다. 비리게 나풀거리는 16비트 리듬과 리프에 가사는 25년이 넘도록 던져온 질문, 찾지못한 해답의 연장이다. 한편으론 뮤지션으로서 여기까지 온 것이 “휩쓸리며 살아온 운명”이라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외면할 수 없는 나를 향한 속삭임들”때문에 그 운명을 계속 받아들이리라는 다짐처럼 들리기도 한다. 방랑하는 음악가 내면의 감성이 보편적 세상 대중의 감상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다 모여 앨범으로 발매될 듯 보이는 근래 싱글들의 면면에서 좋은 징조를 본다. 이제 방경호 정도면 작품성과 대중성을 다 잡는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므로.
글/김성대(대중음악평론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