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진 오브 전복들 트릴로지 #2 ― 원정이는 깔끔해
― 단편선 (오소리웍스, 프로듀서)
전복들은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기타팝 밴드다. 전복들이란 이름은, 물론 무언가를 전복(overthrow)시킨다는 뜻도 포함하지만, 한편으론 '바다의 황제'로 불리는 그 전복(abalone)을 가리키기도 한다. 특이하게도 전복들의 영문 표기는 'Cosmic Abalone'인데 직역하면 '우주전복'이다. 전복들의 전신이었던 밴드 우주전복 때부터 굳어진 영문 표기다.
《오리진 오브 전복들 트릴로지》라는 거창한 이름의 프로젝트는, 실상은 전복들이 2018년 발표한 3곡짜리 싱글 [우주가 전복해]를 지금의 전복들이 다시 부르는 소박한 프로젝트다. '오리진'이라 붙인 까닭은, [우주가 전복해]에 실린 곡들이 전신인 우주전복에서 전복들로 넘어가던 시기에 쓰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주로 기타리스트 이원정의 스케치로부터 말미암아 전복들의 리더인 고창일이 몇 년 간 여러 멤버를 들이고 보내는 과정을 거쳐 지금의 형태들로 귀결된 곡들이다.
프로듀서로서, 전복들을 처음 접하게 된 것도 돌이켜보면 [우주가 전복해] 때다. 비록 아귀가 딱 들어맞지 않는 연주와 아마추어리즘이 가득 묻어나는 퀄리티의 음원이었지만 그 허술함이 좋았다. 이후 2019년부터 함께 작업을 시작, 지금까지 여러 방식으로, 대개는 사운드적으로 보다 진일보한 음악을 선보이고자 했으나 그럴수록 특유의 허술함이 사라지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되었다.
《오리진 오브 전복들 트릴로지》에선 작업방식을 확 바꾸어보았다. 우선 악기를 모두 함께 원테이크로 녹음했다. 너른 공간이 필요한 탓에, 새로 지어진 경북음악창작소 스튜디오에서 작업했다. 보컬은 전복들의 아지트에서 녹음했다. 이전까진 전복들이 서울의 스튜디오로 와서 작업했지만, 이번에는 반대로 대구·경북을 기반으로 작업했다. 보다 편한 분위기에서 연주했을 때, 특유의 허술함도 잘 살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가 작업한 것들을 들으며, 우리는 웃었다. 전복들의 밝고 귀엽지만 어딘가 배배꼬인 세계관 같은 것들, 그냥 이 사람들을 둘러싼 천치 같은 나날들이 묻어난다. 한해가 시작되던 겨울에 녹음한 것들을 봄부터 가을까지 나누어내기로 했다. 계절마다 전복들에게 오는 작은 초대장을 보내고자. 초대에 응하는 것은, 그럼에도 여전히 기타팝을 사랑하는 어떤 소년소녀들의 몫일 테다.
라이너노트 : 목욕을 하면 기분이 좋다
― 이원정 (전복들, 기타)
샤워기를 틀고 오른손을 뻗어 물의 온도를 재었다. 뜨거운 물이 나올 때까지의 시간은 몸과 생각을 씻어내는데 소중한 시간이다. 몸의 HP가 더 이상 회복 불가능할 상태로 머리와 등에 귀신이 백 마리 정도 누르고 있을 때, 혹은 빠르게 회복이 필요할 때, 시간이 없어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서슴없이 가까운 목욕탕으로 간다. 아무것도 챙기는 것도 없고, 사는 것도 없다. 그냥 가는 것이다.
28도에서 가볍게 몸을 데우고, 29도의 뜨거운 온탕으로 옮겨서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두 다리에 힘이 없고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로 비틀거릴 때 눈을 반쯤 뜬 상태로 멀리 보이는 하얀색 선베드에 덥석 눕는다. 꽤 무거워진 왼 손목의 탈의실 열쇠마저 벗어버린다. 몸이 아주 가볍다. 나를 괴롭혔던 모든 것이 사라지고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해결되지 않는 것들도 해결되지 않은 체 새로운 것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 어차피 죽음도 그런 것이 아닐까.
천장을 본다. 이슬처럼 맺어진 물방울.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떨어져 타일을 때리는 소리를 정말 좋아한다.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그 물방울 중 하나가 내 몸으로 떨어진다. 천장이 타일로 된 목욕탕은 사람들을 비추기도 한다. 머리가 아래로 다리가 위로 걸어 다니고 있다. 모든 것이 거꾸로 된 비현실적 세계, 타일 너머 다른 세계가 존재하지 않을까? 스튜디오 시퀀서에서 만나는 리버브가 아니라 진짜 리버브가 가득 담긴 물소리, 아이들의 비명에 마지막 남은 정신마저 해체하고 나면 그때 서야 온전히 쉴 수 있는 평화의 순간이 온다. 잠이 든다.
목욕탕건물을 나와 펑 뚫린 하늘을 보며 가슴속을 비워낸다. 갑자기 기도문이 머릿속에 울린다.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시며…...” 그래, 그렇게 나도 이 곡도 다시 살아났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