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 [죽은 척하기]
물 세상에서 헤엄칠 줄 모르는 사람
-해파
살아가는 것이 제게는 수영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저는 수영을 못하거든요. 어릴 적 수영반에 다닌 적은 있습니다. 레인 앞에 줄을 서서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불면 물에 뛰어들어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앞사람과 간격이 너무 벌어지지 않도록 적당한 속도로 나아가야 했는데 한 번도 그렇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발이 닿지 않는 깊이의 물에 들어서면 매번 어쩔 줄을 모르고 허우적거렸습니다. 어느 날은 엄마가 수업을 보러 왔는데 아무리 물장구를 쳐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제 모습을 가엾게 여겨 수영반을 그만두게 해줬습니다. 락스 냄새와 공용 샤워실의 공기, 절도 있는 호루라기 소리의 기억만을 남긴 채 그렇게 저와 물과의 연은 끝이 났습니다.
그 이후로 마음이 힘들어질 때마다 넓고 깊은 바다의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온 세상이 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안의 사람들은 당연스럽게 숨 쉬고 떠다니고 헤엄치는데 나만 어쩐지 물에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모든 일이 버겁고 부자연스러운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합니다. 물 세상에서 헤엄칠 줄 모르는 사람으로 사는 것처럼 제게 무언가 중요한 생존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함 있는 상품, 중요한 재료가 빠진 요리, 물에 뜨지 않는 배, 가라앉지 않는 잠수함이 된 기분이 들 때는 몸을 웅크리고 죽은 척을 했습니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슬퍼하며 어떤 일도 생기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모든 것이 어서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다음 날이 오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죽은 척하기]에는 2016년부터 올해까지 어푸어푸하며 만든 노래들이 담겨 있습니다. 거대하고 공포스러운 파도처럼 느껴지는 세상에 대한 제 나름의 방책들입니다. 도망가고, 숨어보고, 떼를 쓰고, 울고, 조롱하고, 화를 내도 뚜렷한 답은 없겠지요. 그럼에도 저처럼 물 세상에서 고전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면 이 노래들이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