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사이로 스미는 새로운 숨
숨 KIRARA rework
우연들의 만남은 머무름에도 불구하고 이어진다. 몇 년의 시차를 두고 다시 시작된 만큼, 네 번째 <만남의 우연>은 한 번의 우연한 만남으로만 남지 않고, 그 사이의 간격을 들여다본다. 2021년 말에 싱글로 발매되어, 2022년의 EP [잠 못 이루는 당신에게]에 실린 “숨”이, 다시 몇 달의 간격을 두어 <만남의 우연>의 네 번째 곡이 되었다. 협연뿐만 아니라 다양한 재창작 작업으로 넓어진 이번 만남에서는 ‘시와 키라라’의 리워크, 혹은 리믹스로.
이 ‘숨’에는, 쉼표가 하나 붙어 있듯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호흡부터가, 끊임없는 한 줄기의 숨이 아니라 숨과 그 사이의 쉼으로 이뤄져 있으니까. 시와의 목소리에서 숨이 떠오른다 했던 친구의 말에서부터 출발한 트랙은 정말로 숨의 모습과 닮아있다. 이를테면 숨, 하고 잠시 쉬었다가 발을 떼는 첫마디부터가 그렇고, 그 시작이 “천천히 흐를 수 있게” 삼박자 중에서 앞의 둘에만 기타가 들어가며 음 사이가 살짝 벌어지는 것도 그렇다. 이러한 방식으로 “숨”은 단지 소리뿐만 아니라, 그 사이의 틈 또한 그만큼 중요하게 다룬다. 그렇게 틈새들이 시간 속에 “서서히 스밀 수 있게” 되면, 속도가 숨차지 않을 정도로 빨라지며 빈 공간들이 조금씩 채워진다. 시와의 몸짓에 자연스레 밴대로 숨이 쉬어지며 쉴 틈이 생겨난다. 어느덧 건반 소리가 “너와 나 사이 부는 바람”처럼 시차를 두고 들어오고, 세 개의 소리들은 각자의 간격을 따라, 이번에는 세 박자를 분명히 타고 쿵짝짝 진행된다. 그렇게 “숨, 소리를 내어보면 사이가 생각나”는 이유는 ‘숨’이 들숨과 날숨의 짝으로 이뤄져 있고, 거기에는 언제나 사이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일 테다. 그렇기에 한숨을 돌리거나, 숨통이 트이거나, 숨을 고르는 등, ‘숨’이라는 단어에는 자연스레 사이와 간격, 여유의 뜻이 담긴다. 시와의 몸짓에 배어있는 만큼 음악 곳곳에도 배인 이 여유로운 틈새들은, 시와가 시간을 다루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긴 ‘숨-’이, 이번에는 쉼표 없이, 단숨에 이어지면서, 마침내 틈새들에 소리를 가득 채워 넣어, 긴장 한 방울이 스며들게 할 때처럼. 이렇게 “숨”은 소리에 틈새를 내어가며 시간의 사이를 여유롭게 거니는 곡이 된다.
이번 <만남과 우연>에서 키라라가 “숨”을 옮겨오는 방식 또한 소리 사이의 간격으로 숨 쉴 틈을 낸다. [KM]과 [KM2]에 익숙하다면, 뛰어난 리믹스 음악가로서 키라라가 원곡을 얼마나 사려 깊게 분해하고 재조합하는지를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러한 키라라의 솜씨가 귀에 익었다면, “숨 (KIRARA rework)”에서 펼쳐지는 풍경이 조금은 낯설 수도 있다. 빼곡한 시퀀싱으로 빈틈없게 담기곤 했던 소리들이, 이번에는 꽤나 성글게 배치되었기 때문이다. 듬성듬성하게 들어간 이 소리들은 주로 트랙의 단면이 드러나도록 잘게 잘린 샘플과, 글리치로서 전자적이게 합성된 작은 잡음들로 이뤄졌다. 사운드의 기초적인 뼈대가 되어주는 킥 드럼과 클랩을 제외하자면, 이 잡음과 단면은 각자의 간격을 두어 다른 길이의 사이를 내, 차차 리듬을 만들어간다.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소리들이 이렇게 드문드문하게 배열될 때, 샘플링된 단면들이 띠고 있는 질감과 작은 잡음들이 움직이는 모양새가 훨씬 자세히 들려오고, 소리들이 부재하는 사이 또한 확실히 실감할 수가 있다. 박자들이 소리와 사이의 관계에 따라 비틀거리는 긴장 속에서도, 분명히 들려오는 소리들과 함께 단정한 여유가 생겨난다. 세 박자였던 “숨”이 두 박에만 기타 소리를 집어넣거나 각 소리의 너비를 밀고 당기는 것으로 간격을 만들어냈듯, “숨 (KIRARA rework)”는 네 박자 속에 주어진 소리들을 넣거나 특히 넣지 않으며, 전자적인 숨과 그 사이의 쉼으로 이뤄진 풍경을 구성한다. 키라라가 재구성한 이 틈새 많은 리듬이, 시와의 “숨”과 마찬가지로 숨 쉴 틈의 정취를 이끌어낸다.
리듬의 형태로 틈이 내졌을 때, 또 다른 소리들이 여유로운 분위기에 기여한다. 시와의 다양한 목소리들, 잠깐의 날숨부터 저마다의 음계를 띤 ‘라’ 소리와 리믹스의 마법으로 더욱 길게 늘여진 ‘숨-’까지가, 각자의 길이로 떼어지고 각각의 간격으로 배열된다. 조그마한 잡음으로 나타난 글리치나 잘게 잘린 기타 음계와 같은 선상에서 가지런히 나열된 이 소리들은, 여전히 시와의 음색이 배인 채 말끔하고 또렷하게 들려온다. 키라라가 원래의 소리들을 사려 깊게 분해하고 재조합해 제작한 사운드스케이프는 바로 이렇게, 원곡의 해체와 보존이 함께 일어나는 ‘만남’으로도 이어진다. 시와의 음색에 담긴 든든한 무게감이 서린 숨소리 위로, “숨”에서 피아노 소리가 찾아오듯 한 줄기 풀벌레 소리가 울려 퍼진다. 쓰르라미로도 자주 불리는 일본 저녁매미의 이 울음소리는 요즈음의 키라라가 숨을 돌리는 풀밭에서 느꼈던 ‘숨 쉴 틈’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한다. 자연의 소리들만큼이나 고즈넉한 정서를 단숨에 불러일으키는 음색도 없는 만큼, 풀벌레 소리는 움찔거리는 리듬으로 생겨나는 긴장을 넉넉히 풀어주고, 특히나 음원이 발매될 즈음인 초여름의 이미지를 고요히 환기해주는 듯 다가온다. 시와의 목소리를 잘라 붙인 단면들이 연이어 흘러나오는 글리치의 행렬이, 문득 찌르르르 우는 일본 저녁매미의 울음소리와 닮게 들려온다. 숨소리와 목소리, 그리고 울음소리가 사이를 넓히고 좁히면서, 숨 쉴 틈으로 이뤄진 여유로운 여름밤 같은 정취가 하나의 음향적 풍경으로 완결된다.
합성된 글리치와 잘라낸 샘플이라는 두 개의 잡음, 또 사람 목소리와 풀벌레 울음소리라는 두 종류의 소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원곡과 리믹스라는 두 가지의 상태, 그 간극에서 “숨”과 “숨 (KIRARA rework)”은 어떻게 만남이 이뤄지는지를 들려준다. 틈새를 내어주고, 소리들 간의 사이를 유지한 채, 시간의 흐름 또 소리의 부재를 활용해, 여백의 모양과 크기를 조절하고, 결국에는 나란한 차이들을 받아들이면서. 시간의 틈새를 통해 들숨과 날숨이 나눠지듯, 소리들 또한 그 틈새를 통해 저마다의 모양과 음색이 구분될 수 있게 나타난다. 시와의 옆모습이 네모 조각들로 잘게 잘려 배치된 음반 커버에서도 네모꼴의 단면들과 시와의 형체 모두를 알아볼 수 있듯이. 비슷하게, 그 위로 덧입혀진 키라라의 눈꽃 모양에서도 듬성듬성한 여백들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를 확실히 알아볼 수 있는 것처럼. 시와와 키라라가 함께 만나 만든 숨 쉴 틈의 모습이, 바로 그와 닮았을 것이다. 소리의 사이를 차분하게 내어가는 “숨”과, 그 소리들로 세심하게 틈새를 열어주는 “숨 (KIRARA rework)”은 들숨과 날숨처럼, 그 사이를 통해 하나의 숨으로 연결된다. 숨이 트이는 틈새 사이로 새로운 숨이 스민다.
- 나원영 (대중음악비평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