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미래, 희망과 불확실함을 솔직하게 노래하며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펼치고 있는 8호실 peridot가 2집 ‘꽃과 깁스’로 돌아왔다. 지난 2018년 가을 발매한 1집 ‘COMMON LIFE’ 이후 약 3년 반만인 이번 앨범은 기존 멤버 재우, 영제와 함께 새 멤버 영진의 합류로 그룹의 2막을 연다.
스스로를 ‘풀타임 워커스’라 부르는 이들은 작업실 밖에서는 각자 엔지니어, 학생, 그리고 연구원으로서 살아간다. 고도의 꼼꼼함과 주도면밀함을 요구하는 본업의 특성과는 다르게, 이들의 음악 작업 방식은 역설적이게도 매우 즉흥적이다. 작업실에 둘러앉아 한 명이 비트를 찍어내면, 나머지 멤버들이 그 위에 신시사이저를 깔고, 드럼을 얹고, 호른을 불고, 기타를 치는 식이다. 어설프게 어우러진 불협화음 사이 터무니없는 가사와 엉성한 멜로디를 흥얼대고, 이어 숱한 시행착오와 손질을 거친 후에야 어렴풋이 상상했던 음악을 완성한다.
추상적이지만 구체적이고, 체계가 없지만 확고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이들의 작업 과정은 더 넓은 관점에서는 그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와도 맞닿아있다. 앨범의 첫 번째 트랙 ‘난 알고 있었지'는 그들이 이제껏 이끌어왔고, 또 이끌려 온 삶의 궤적을 좇는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순 없다고 꾸짖는 사회와 때로는 타협하고, 때로는 반항하고 떼를 쓰며 각자의 여정을 이어온 그들.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길을 잃었다는 생각에 좌절했지만, 이러한 선택이 축적되어 적당히 만족스럽고 적당히 아쉬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시절 내렸던 결정들이 사실은 각자의 직관과 잠재의식이 꽤나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결과였음을, “난 알고 있었지/너도 다 알고 있어/우리가 알았던 생각의 방향대로/가는 거야”라는 노랫말을 통해 고백한다.
비슷한 고백은 두 번째 트랙 ‘Boomerang’에서도 이어진다. 본인이 직접 처한 상황엔 자기 연민에 취해 통탄하고 울부짖다가도, 이내 서로의 아픔에 대해서는 불쑥 “물음표를 다는" 그들. 공감해 주고 싶지만 나 아닌 타자의 아픔은 완벽히 헤아릴 수 없기에, 이들은 얼렁뚱땅 서로의 상처에 깁스를 채워주는 물리적인 위로로 마음을 대신한다. 이어 정해진 목적지 없이 등 떠밀려 살아가는 자신들의 모습을 그리는 ‘Adari’에서는 “흐물거리다 조류(潮流)를 발견”하고, 그 조류에 자신의 몸을 맡겨버리고 싶다고 고백하며, 마지막 트랙 ‘1집은 망했지만’에서는 과거의 고집과 어리석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또 그리워한다.
감람석의 일종인 ‘페리도트’를 그룹의 이름에 넣은 이유에 대해 묻자, 이들은 4년 전 그룹명을 지었던 날을 회상했다. 부담 없이 쉽게 짓고 싶다는 생각으로 무턱대고 홍대 거리를 걷던 중, 한 주얼리숍의 이름인 ‘Peridot’가 눈에 들어왔고, 당시 드나들던 작업실의 방 번호를 이어 붙여 ‘8호실 peridot’라고 정해버렸다고.
확인 결과 그들이 주얼리숍이라고 몇 년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상호 ‘Peridot’는 왁싱 전문숍이었다. 무념무상으로 길을 걷다가 마주한 단어를 마치 운명을 넘어선 일종의 계시처럼 받아들였지만, 이는 “다 아는척해봐도 어떤 것도 모르는” 그들의 섣부른 판단이 지어낸 모래성 같은 믿음이었음을. 그러나 모든 단계에서 옳고 그름을 시시콜콜하게 따지지 않아도, 반점 짜리 정답 속에서도 나름대로의 의미를 찾아내고 발전시켜 가는 그 과정을, 나는 우리 모두의 인생이라 부르고 싶다.
- 박지민 Jimin Park (현대미술 갤러리 홍보직)
8호실 peridot, 정규 2집 [꽃과 깁스]
2022. 4 Tracks. 13:50.
01. 난 알고 있었지 03:33
02. Boomerang 02:58
03. Adari 03:55
04. 1집은 망했지만 03:1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