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이어지는 불안의 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영화 [컨택트](2016)의 원작자인 테드 창의 단편소설 제목(2019)이기도 하고, 앞서 철학자 키르케고르가 저서 [불안의 개념](1844)에서 ‘불안’이라는 개념을 파고들며 비유한 표현이기도 하다. 직접적인 연관 관계는 없지만, 문이랑은 이 곡의 제목이 전자로부터 유래했다고 귀띔했다. 소설 속 세계는 양자물리학의 다세계 해석에 기초한 ‘프리즘’이라는 장치를 통해 다른 선택을 한 평행우주의 ‘나’와 소통할 수 있는 세계다. 후자의 키르케고르는 “불안 속에는 가능성이라는 이기적인 무한성”이 있으며, 그것이 “달콤한 마음의 두근거림으로 사람을 답답한 불안”으로 빠뜨린다고 주장했다.
색소포니스트 김오키와 프로듀서 문이랑. 두 사람은 각기 재즈 신과 전자음악 신에서 부지런함과 다재다능함으로 손꼽히는 전방위 아티스트다. 단순한 다작을 넘어선 이들의 거침없는 행보는 국적과 예술의 장르는 물론, 그것이 다루는 메시지의 경계까지 넘나든다. 2015년, 비주얼 아티스트 연YEON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진 ‘EMPTY SPACE (feat. 김오키 Kim Oki)’를 통해 세 사람은 겉으로 비어 있지만, 사건과 기억이 그 속에 부유하거나 침잠함으로써 더는 비어 있지 않게 된 공간을 진한 정서로 묘사한 바 있다. 말하자면 이 곡은 순간의 단면을 포착한 기록이자 그것의 복잡한 감정까지 실어나르는 매개체다.
‘EMPTY SPACE’가 무한한 공간에 기재된 마음의 일부를 바라봤다면,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은 무한한 시간에 내던져진 유한한 몸을 주목한다. 차분하게 출발해 점차 처연함과 날카로움을 드라마틱하게 더했던 전작과 달리 이 곡은 마치 비트와 색소폰 선율이 이전부터 이어지고 있던 것과 같은 다소 능청스러운 루프 사운드로 시작한다. 그리고 계속된 비트의 반복적 점멸, 특정한 형식으로부터 달아나 모든 가능성과 몽환적 분위기를 동시에 품은 앰비언트 사운드, 기승전결의 전형을 따르지 않는 자유분방한 김오키의 솔로잉 등을 거치며 앞과 뒤, 인과관계의 구별이 모호한 세계가 완성된다. 이는 우리가 점차 중심을 향해 파고들어 발견하는 심연이나 수면 위에서 마주하는 빛이 아니라 명과 암의 경계가 흐릿한 현실이자 그것의 절묘한 중간 지점에서 저마다의 의식을 붙잡고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다.
불안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평안’? ‘안정’? ‘여유’? 언뜻 떠오르는 많은 보기가 있지만 적확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말 ‘불안’(不安)이라는 단어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라는 부재와 부정의 개념으로 탄생했지만, 오히려 부정의 부정이 너무도 다양한 상태를 내포하는 까닭에 마치 그것이 기본인 것처럼 정립되었다. 알다시피 재즈는 자유와 즉흥의 토대 위에 역사를 쌓은 음악이다. 전자음악과 전자음악 기술의 등장은 인류에 무한한 창작의 자유를 제공했다. 김오키와 문이랑은 두 영역에 있어 탈형식의 최전선에 늘 서고자 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악기 리드에 호흡을 불어넣어 소리를 내는 색소폰 연주는 몸의 한계를, 창작은 의식의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다. 그리고 인간은 이처럼 유한한 몸과 의식의 종합이기에 불안할 수 있으며, 불안이 치열하게 지속할수록 그는 위대하다. 단 한 순간도 불가능성의 세계로 달아나지 않고 기꺼이 불안의 춤을 추는 이 곡이 그렇다.
Words by Chung Byungwook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