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로사 [Ticket To Ride]
나이 마흔, 이렇게 늦은 나이에 첫 음반을 냈으니 그동안 하고 싶었던 얘기가 얼마나 많았을까. 그래서인지 슬라이드 로사의 첫 음반 [Ticket To Ride]에 담긴 음악들은 어떤 곡도 유사하지 않다. 모두 다른 어법, 모두 다른 스타일이다. 청량하고 호쾌한 기타가 드라마틱하게 상승하는 "지금"과 어쿠스틱 기타와 퍼커션이 다정하고 따뜻하게 어울리는 "예뻐", 여유로운 보컬 감각이 빛나는 "So Far So Good",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가 귀엽게 리드미컬한 "목요일 오후 4시", 노이지한 사운드를 부각시키며 현실을 냉정하게 재현한 "비둘기", 어쿠스틱 기타만으로 처연하게 흔들리는 "0416", 블루지한 흑인 영가의 질감이 배어있는 "We All Need Someone"까지 그녀의 음악들은 모두 그녀에 대해 어떠한 고정관념도 갖지 못하게 만든다.
이 곳에 가 있구나 생각하면 그새 다른 곳에 가 있는 그녀의 음악은 그녀가 음악으로 할 수 없는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이다. 그녀의 음악적 기저를 흐르는 것은 어쿠스틱 기타에 기반한 포크 록이지만 수록곡들은 포크 록의 범주를 훌쩍 뛰어넘고 있다. 그녀는 단순히 장르적 음악 언어를 충실하게 구축하기 위해 음악을 하고 있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그녀가 수록곡들을 이처럼 다채로운 어법으로 펼쳐놓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모든 수록곡들을 부른 그녀의 목소리는 노래 안의 멜로디와 연주로 창출되는 사운드 안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노래의 호흡과 가사의 이야기가 빚어내는 음악의 흐름 속에서 그녀는 음악의 무게감에 짓눌리지 않고, 동시에 자신을 강하게 어필하는데 급급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노래가 있어야 할 자리를 본능적으로 깨닫는 천부적인 가수처럼 자연스럽게 노래를 부를 뿐이다. 기교와 계산으로는 도저히 만들어질 수 없는 여유로움과 자연스러움, 스스로 그 노래가 되지 않고는 만들어낼 수 없는 세계가 슬라이드 로사의 목소리로 펼쳐진다. 그것이 바로 슬라이드 로사가 여느 여성 싱어송라이터와 다른 지점이며 첫 앨범을 내놓은 그녀를 더 이상 신인이라고 부르기 무색한 이유이다. 그녀의 노래는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다. 곰삭았다거나 원숙하다고 말하기에는 새록새록 싱싱하고, 기술적으로 완벽하다고 말하기에는 억지로 기운 구석이 하나도 없다. 악을 쓰고 쥐어짜는 보컬들이 흥건한 시대, 이런 보컬이 어디 숨어 있다 이제야 나타난 것일까.
게다가 그녀의 노래에는 자신 안에 갇혀 있는 존재 특유의 과장된 감상도 없다. 삶을 바라보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자세는 트랜디하고 반짝이는 감성의 현란함 대신 성숙한 성인의 넉넉함이 느껴진다. 마음 편한 친구처럼, 오래 살아 세상에서 가장 편한 제 집처럼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게 하는 편안한 노래들이다. 선명한 멜로디를 반복하며 효과적으로 확장해나가는 어법도 친근함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 말로 하기엔 너무나 쉬운 얘기지만 실제 음악으로 이런 마음을 느끼게 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오래도록 노래하지 않았다면, 노래를 껴안고 오랫동안 살지 않았다면, 노래와 함께 마음을 비우고 삶을 다잡지 않았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음악이다. 오늘, 슬라이드 로사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