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이맘때 쯤이었던가? 한 수사물 드라마에서 OST 의뢰가 들어왔다고 이pd에게 다급한 연락이 왔다. 지난번 웹드라마 때의 악몽이 떠올라서 재차 물었다. “이번엔 진짠가요?” 확실하단다. ‘100퍼센트 아니면 이제 너한테 미안해서 얘기 안 한다.’며 호언장담을 한다. 다음날까지 빨리 보내줘야 한다고 닦달을 하고 지랄이다. 또 술 먹다가 작업실로 쫓겨 들어왔는데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그래도 이번엔 메이저 드라마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님도 등장하시니까 한 번만 더 속는 셈 쳐본다. 높으신 관계자들이 공개된 보도자료 내용 빼고는 일체 알려줄 수 없다고 하니 배우들 대본 리딩 영상을 열심히 모니터해가며 여주인공 테마곡을 써 내려갔다. 즐거웠다. 그분이 달려갈 때 이 노래가 흘러나오는 장면이 그려지는 게 그렇게 뿌듯하더라. 그렇게 밤샘 작업 중에 피디 새끼가 즐겁게 페북질하는 거 보고 갑자기 열받아서 엉엉 울었다. 마치 뒤에 있을 비극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마침내 음악감독님도 만나서 인사하고 그쪽에서 연결해준 녹음실에서 녹음도 다 마쳤다. 정말 나오는 건가 싶다. 일주일이 지났다. 진행 상황을 알 수가 없다. 모니터 트랙이 넘어오지 않는다. 이주가 지났다. 문제가 생겼다고 하는데 여전히 기다려 보란다. 기다린다. 삼 주가 지났다. OST 제작사가 갑자기 바뀌면서 음악감독님이 그만뒀다고 한다. 이pd가 요 며칠 내 눈치를 본다. ‘아 우리가 무명 밴드라 또 짤렸구나.’ 이젠 화도 안 난다. 이유를 물어보니 코로나가 어쩌고 참 내. 요즘 시대엔 지나가던 강아지한테 물려도 코로나 탓이다. 욕하고 싶은데 이번엔 욕하지 말란다. 영향력 있는 분들이니 적 만들어 좋을 거 없다면서. (저번엔 아니었나보다) 근데 누누이 말하듯이 나 같은 여자애가 이런 글 쓴다고 누가 신경이나 쓰겠냐? 히밤 뽀또 꺼져버려라. 본인은 일개 소시민이라 거대 권력이 무서워서 만만한 이pd를 향해 욕해본 거다. 오해하지 마시라. 결국 그 드라마는 코로나의 영향으로 방영 일자가 무기한으로 미뤄지다 여차저차 방영했는데 결국 망했다고 한다. 그 와중에 베이시스트였던 친구는 끝까지 다 봤다고 해서 속으로 존나 때리고 싶었다.
시간이 꽤 지났다. 아직도 코로나는 창궐 중이고 우리 모두는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다. 고작 드라마 OST 까인 게 대수인 걸까.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전하고 싶다는 말이 인터뷰용 멘트로만 남아서는 안되지 않겠나. 가사를 바꿨다. 조금 더 따뜻한 희망의 말을 더했다. OST용으로 멋진 기타리스트(aka. 기택쌤)가 쎄션한 트랙을 지우고 내 투박한 기타를 얹었다. 드럼과 베이스 트랙을 ‘우리’ 녹음실에서 재녹음했다. 이 년 동안 늙어버린 내 성대를 위해 키도 낮췄다. 무튼 이 노래는 내 야망으로 출발해서 모두를 위한 위로의 메시지로 도착했다. 누가 들어도 수사물 ost 같은 기타 리프로 시작하는 곡이지만 코로나를 때려잡겠노라 하는 형사의 마음이라 포장해 본다. 이것 정도는 봐줘라. 신선하잖아.
비 온 뒤에 이 땅이 더 단단해지길. 눈물 뒤에 여러분의 마음이 폭신해지길. 너무 힘들고 지친 마음에 아직 이겨낼 힘이 남아있길. 준비된 자들이여, 저기 꼭 큰 한방을 얻어내길. 그리고 우리의 음악이 산세베리아처럼 숨 쉴 수 있는 작은 구멍이 되길 바라며 앨범일지를 마무리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