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적 취향, 시대적 고민, 희로애락을 담은 노래들이 정연히 쌓였다. 화려하진 않지만 다양하고, 온화하다. 조곤조곤 이야기를 건네며 꾸준히 나아간 최새봄은 음악가로 스무 살을 맞았다. 오래된 블루스와 포크, 카렌 카펜터(Karen Carpenter) 목소리를 여전히 좋아하고 앰비언트, 국악에 관한 관심도 커졌다. 창작과 연주를 즐기며 제법 많은 결과물을 내놓은 전업 음악가인데도 살짝 겸연쩍은 모습을 보인다.
2008년, 밴드 아톰북의 첫 앨범 [Warm Hello From The Sun]을 발표한 이후 같이 연주할 동료를 찾으며 만든 노래, 혼자 작업하기 좋은 노래가 하나둘 늘어났다. 여전히 밴드를 원했으나 솔로 활동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한 솔로 프로젝트가 빅 베이비 드라이버로 밴드, 협업을 오가며 오래 기억될 음악들을 남겼다. 누군가의 일상 혹은 여러 드라마 배경음악으로 사랑받은 노래들을 떠올려보자.
빅 베이비 드라이버의 과거와 현재, 남긴 것과 남은 것(Leftover & Remainder)
10주 간격으로 발표하는 [Leftover], [Remainder]는 영어 가사가 주를 이룬 아톰북과 초기 빅 베이비 드라이버를 추억하게 하는 미니 앨범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앨범에 실리지 않았거나 묵혀둔 노래들을 새로 작업하다 본의 아니게 규모가 커졌다. 그리 낯선 광경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알 만한 앨범들이 이런 과정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Leftover]에 실린 다섯 곡은 과거와 현재를 비춘다. 익숙하면서도 새롭다. 악기 편성은 다양하다. 악기와 음악 관련 장비에 관한 관심이 고양이 다음으로 많은 음악가라 지루할 틈이 없었을 것이다. 틈틈이 레슨을 진행하기도 하는 기타는 일렉트릭, 클래식, 어쿠스틱, 베이스를 모두 연주한다. 가상악기로 평소 좋아했던 낡은 오르간 소리를 구현한 것도 눈에 띈다. 일종의 ‘덕질’ 같은 순수한 열망이 조화로운 연주로 귀결됐다.
아늑한 도입부부터 마음을 녹이는 ‘Where Do We Go from Here’는 비교적 최근에 작업한 곡인데도 데뷔 앨범을 처음 들은 2011년 여름으로 인도한다. 어쿠스틱 기타와 해맑은 보컬을 중심으로 친숙한 멜로디를 풀어내며 기쁨을 안긴다. 드라마 음악으로 잠시 쓰이기도 했던 이 곡은 노랫말을 조금 바꾸고 소리를 다듬어 정식으로 발표하게 됐다.
이어서 무난한 팝 록 사운드를 지향하는 ‘Let Me Take You to the Edge of the World’가 기복 없이 살랑인다.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다정한 노래다.
조금 더 힘이 실린 ‘Monster’는 70~80년대 팝이 연상되는 비트, 살짝 떨리는 듯한 후렴구 보컬과 뒤를 받치는 코러스가 매력적이다. 잠시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을 떠올리기도 했다. 오르간, 키보드를 적절히 배합한 덕에 밸런스가 좋다.
몇 년 전부터 한국 고전 영화를 보는 취미는 ‘I Won’t Do It Again’으로 연결됐다. 밑그림은 있었지만 조금 유치하다고 여긴 노랫말은 너무 오래전이라 제목 구절만 기억할 수 있는 상태에서 영화 대사를 삽입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급기야 그간 본 영화들을 찾아봤고 가능하다면 새로운 걸 발굴하길 바랐다. 하지만 1961년에 개봉한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만큼 재밌는 게 없었다. 당대의 풍경, 패션, 소품, 말투에서 특정 세대만 이해할 법한 정서를 느꼈다. 춤추는 오르간과 전자 키보드, 영화 속 옥희 목소리와 아저씨 대사가 어우러진 기묘한 노래는 그렇게 완성됐다.
[Leftover]는 찰랑이는 기타와 오르간이 제법 요란한 ‘How to Kill My United Blues’로 마무리된다. 밴드 버전이었다면 더 무겁고 느리게 연주했을 것으로 보인다. 공연장에서 이 노래를 라이브로 즐길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길 바라본다. 우선 예전 앨범들을 함께 들으며 5월에 나올 [Remainder]를 기대해보자.
정규 앨범 디스코그래피
Big Baby Driver, 2011년
포크, 블루스, 어쿠스틱 팝이 공존하는 데뷔 앨범은 기복 없이 차분히 흐른다.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으나 뻔한 노래들은 아니다. 무심코 듣다 조금씩 더 귀를 기울이고 점점 빠져들게 된다. ‘38,000km 너머의 빅베이비’, ‘Your Sun Is Stupid’, ‘내일’ 등을 추천한다. 군더더기 없고 노랫말도 대체로 짧은 앨범이다.
A Story Of A Boring Monkey And A Baby Girl, 2014년
한국어 노래가 늘고 사운드는 풍성해졌다. 대중성에 깊이를 더한 앨범으로 실력 있는 동료 음악가가 대거 참여해 힘을 실어줬다. 포크와 팝을 아우르는 47분짜리 사운드트랙은 담담하고 진솔하다. ‘Baby You’가 사랑받았으며 ‘언젠가 그때까지’, ‘아무렇지 않은 듯 뒤돌아서서 그냥 그렇게 떠나버렸네’, ‘You Make Me Cry’도 추천한다. 앨범은 2015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음반 부문 후보에 올랐다.
사랑, 2020년
6년 만에 발표한 세 번째 앨범은 이런저런 사랑의 순간을 노래에 담았다. 동료 음악가 영향으로 조금씩 익숙해진 한글 가사는 앨범을 모두 채울 만큼 자연스러워졌다. 많은 악기를 직접 연주했고 이야기는 더 선명해졌다. ‘사랑’, ‘고양의 봄(순이에게)’, ‘열두 겹 이불 아래 완두콩’ 등 열 곡이 앨범에 담겼다.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지만 무겁지 않고 온화하다. 새삼 좋은 위로가 되는 음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