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 [끝]
저는 제가 이별이라는 감정을 통해 많은 경험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별이 찾아왔을 때 많은 변화를 겪었고 제일 감정이 풍부해졌던 시기였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별을 통해 얻었던 감정들은 대부분 슬픔, 외로움, 원망 등 부정적이었으며 이런 감정에서 파생된 그리움이 제 내면을 많이 차지했죠. 이런 이유 때문인지 이전 이별 노래들은 이런 감정선들이 지배적이었고, 그런 감정선들이 이별 노래에 지배적인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나 이별을 겪으면 슬프고 외롭고 힘듭니다. 심적으로 매우 연약한 상태에 놓이게 되죠.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이런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공감을 원하고 슬픈 감정선이 주를 이루고 있는 이별 노래를 들으며 이를 어느 정도 충족시킵니다.
하지만 저는 이별이 가져다주는 다른 감정선 또한 사용해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고마움과 사랑, 그리고 이런 감정에서 파생된 또 다른 온도의 그리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삶은 만남과 이별의 연속이라고 생각합니다. 만남이 있으면 아무리 싫더라도 이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끝에 이별이 존재하기에 저희는 누군가와의 만남을 더 소중하게 여길 수 있고, 설령 이별을 겪더라도, 곧 바로는 아니겠지만, 이후 돌아봤을 때 함께한 시간이 아름답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시간을 같이 나눠준 상대방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며 끝맺음을 지을 수 있죠. 저는 이별이 주는 슬픔을 같은 맥락의 슬픔으로만 공감하지 않고 이런 따뜻한 끝맺음으로도 보듬어보고 싶습니다.
이별은 어떻게 보면 상처와도 같습니다. 상처를 계속 건들기만 하면 오히려 회복하는데 시간이 더 소요되고 잘못하다가는 흉 지을 수 있습니다. 이별이라는 상황에서 공감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내 이별의 슬픔을 자극하는 손길과도 같죠. 이 손길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과하면 내가 겪는 슬픔에 더 깊게 빠지는 원인이 될 수 있죠. 따라서, 때로는 내가 당장 겪는 슬픔에 대한 공감보다 그 슬픔을 승화할 수 있는 따뜻한 위로가 더 필요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 앨범 [끝]을 통해 이별을 겪는 많은 사람에게 이런 의도가 전달됐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1. Fingertips
- Fingertips는 이미 끝에 도달한 연인 사이를 떠오르며 만든 곡입니다. 누구보다 가까웠던 사람이, 아직도 가깝게 느껴지는 그 사람이 점차 멀어지다 이제는 붙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는 상황을 표현하며 이별 직전에 제가 느낀 무기력함을 담아본 곡입니다.
2. 끝
- 이번 앨범의 1번 트랙 ‘Fingertips’가 부정적 슬픔이 주된 감정선을 차지한 곡이었다면 ‘끝’은 이별의 슬픔을 위로로 보듬어주고 싶어 만든 곡이었습니다. 연인과의 이별을 나눈듯한 가사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사실 이 곡에서 제가 담아낸 이별은 제가 어렸을 적 거주했던 곳과의 이별입니다. 약 5년간 미국에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게 남을 정도로 행복하게 지냈었던 곳이었기에 한국으로 돌아올 때의 심정은 지금 생각해보면 누군가와의 이별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곡을 작업하며 저는 그때 당시 제가 누구한테도 받지 못한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