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날개 [희망과 절망의 경계]
[의식의흐름] 이후 ...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
데뷔 EP [상실의시대]로부터 10년이 지났다.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다. 첫 풀렝스 [의식의흐름]으로 밴드는 굵직한 수상 이력을 새겼고, 적지만 단단한 팬층을 얻었다. 특유의 긴 호흡, 트렌드와는 먼 감성, 문학적인 노랫말은 압도적인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기엔 어려운 요소들이다. 하지만 이상의날개는 그런 건 잘 모르겠다는 듯 묵묵히 길을 헤쳐 나갔다. 어느새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다. 참신한 실험은 없었지만 소신이 뚜렷한 행보였다. 떠올려보라. 포스트록의 드라마틱한 구성, 옛 가요에서 빌려 온 아련한 정서, 헤비니스의 통렬함을 동시에 간직한 밴드는 많지 않았다. 이상의날개만의 브랜드였다.
리더 문정민에 의하면 이것은 [상실의시대]에 포함하지 못한 이야기다. 후일담이다. 하지만 들어보니 [희망과 절망의 경계]는 확장판이라기보다는 EP를 프롤로그 삼은 본편에 가깝다. 그러므로 그릇은 커져야 했다. CD 한 장으로는 부족했고, [의식의흐름]과 마찬가지로 더블 앨범이 되었다.
여전히 그들은 미숙했던 청춘과, 좌표를 잃어버린 채 항해하는 개인의 삶을 노래한다. 장르적 특성상 앨범 전체를 감상하는 것이 바람직할 테지만, 그래도 몇몇 제목을 언급해본다. 먼저 “아름다운 시절을 그땐 미처 알지 못했던” 안타까움이 담긴 타이틀곡 ‘스무살’을 호명해야 한다. 또렷한 선율과 섬세한 연주를 붙들고 있으므로. 다음으로 싱어송라이터 아슬(Aseul)이 가세한 ‘그림자’와 ‘영원’이다. 무려 22분에 달하지만 주제의식이 응축되어 있어 놓칠 수 없는 입구와 출구다. 보편적인 이야기는 본디 개인적인 일화로부터 나옴을 말하는 듯한 ‘어느 날 둔촌동역 앞 횡단보도를 걷다가 가만히 서서 바라본 하늘’은 어떠한가? 독보적인 서정성과 만날 수 있다. 극적인 연주곡을 찾고 있다면 ‘향’을 강력히 추천한다. 포스트록 본연의 매력은 좀 더 이런 쪽에 근접해 있지 않을까.
음반을 들을 때 커버 이미지를 중요시하는 편이다. 멋진 커버 디자인은 내부에 기록된 예술품의 감흥을 배가하기 때문이다. 다시 [희망과 절망의 경계] 커버를 본다. 회색과 검은색이 교차된 선 위에 한 사람이 서 있다. 짐작건대 그는 밴드가 강조하고 싶었다는 ‘경계인’의 모습이리라. 단순하면서도 핵심을 잘 짚은 아트워크다. 실물 음반으로 만나면 더욱 멋질 것 같다.
누군가는 ‘흐름으로서의 록’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고들 한다. 하나 잠시 주변을 둘러보길 바란다. 조용히 빛을 발하는 록 음악은 얼마든지 존재하니까. 이상의날개의 작품이 그렇다. 단언컨대 주파수가 맞는 사람들에겐 이보다 멋진 음악도 드물 것이다.
이경준 (대중음악평론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