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것만으로 삶의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노래
휘진 [BLESSING]
낯선 청춘 최 규용
휘진은 성악가이다. 하지만 그의 음악적 스펙트럼은 클래식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무겁지 않은 부드러운 창법으로 가요, 월드 뮤직 등을 폭넓게 노래해 왔다. 그 결과 클래식 애호가뿐만 아니라 장르에 상관없이 편안한 노래를 선호하는 보통의 사람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아왔다. 그가 폭넓은 레퍼토리를 노래하게 된 것은 클래식을 널리 알리고 그 대중적 기반을 넓힌다는 식의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그 곡들이 좋아서였다. 우리가 어떤 곡을 좋아하면 어설프게나마 노래하고 싶듯이 그 또한 자신의 마음에 들어온 곡들을 노래하고 싶어 했다. 다행히 그는 그 곡들을 노래할 능력이 있었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EP [BLESSING]에 담긴 세 곡도 마찬가지다. 이 앨범에서 그는 권진원의 곡들을 노래했다. 평소 그는 권진원의 노래를 좋아했다. 그런 중 서울 예대에서 강의를 하게 되면서 귄진원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권진원은 그에게 자신의 노래 “축복”이 그의 목소리에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했다. 휘진 또한 평소 이 곡을 좋아했던 만큼 새로이 노래하고 싶었다. 그러나 실제 이 곡을 노래할 기회를 만나기까지 그는 몇 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노래이다.
그렇다면 휘진은 무엇이 마음에 들어 듣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권진원의 곡을 직접 노래하려 했을까? 그것은 바로 권진원의 노래에 담긴 특별한 과장 없는 담백한 사운드, 그 안에 담긴 소소한 행복의 정서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권진원의 노래에서 인생을 바꾸는 큰 사건보다는 하루를 새롭게 만드는 작은 사건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삶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이유로 권진원으로 노래를 좋아한다.
실제 휘진이 노래한 권진원의 세 곡은 삶의 행복을 담고 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 것에 대한 행복(축복), 만남을 통한 충만한 삶의 기대(나무),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가 주는 기쁨(Happy Birthday To You)를 이야기한다.
휘진의 노래도 이러한 행복의 정서를 그대로 담고 있다. 성악가의 노래임을 인식하기 전에 마음 푸근한 삼촌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부모님께 말하기 어려운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삼촌 말이다.
한편 행복을 노래한다고 해서 휘진은 마냥 달뜬 분위기로 노래하지 않았다. 햇살 좋은 날 공원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담아 나지막이 노래를 들려주듯 편안하고 포근하게 노래했다. 이것이 나는 참 마음에 든다. 누군가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나아가 그 사람의 존재에 감사해 하는 것은 겨울을 밀어내는 봄날의 훈풍 같은 것이다. 어느새 겨울이 지나 봄에 위치한 것을 느끼는 것처럼 모르는 사이에 내 삶에 스며든다. 만약 이 은근한 행복을 잘 전달하겠다고 편곡을 더 복잡하게 하고 더 가볍게 노래했다면 노래 자체는 즐거울지 모르지만 소소한 일에 감사하는 정서는 바랐을 것이다.
휘진의 노래를 감싸는 사운드 또한 매력적이다. 이번 EP에 담긴 세 곡의 편곡은 재즈를 바탕으로 월드 뮤직, 크로스오버 뮤직을 가로지르는 활동을 하고 있는 기타 연주자 박윤우가 담당했다. 그는 원곡의 정서를 반영하면서도 보다 더 간결한 사운드의 연출에 주력했다. “축복”에서 스트링 오케스트라를 스트링 쿼텟으로 대치해 우아함을 더한 것-스트링 쿼텟 편곡은 김은영이 했다-, “나무”에서 피아노를 대신해 공간적 여백이 많은 기타로 시적인 맛을 더한 것, “Happy Birthday To You”에서 타악기 등을 배제한 기타만으로 축하의 마음을 돋보이게 한 것이 그렇다. 이러한 힘을 들이지 않은 부드러운 사운드는 휘진의 노래를 더욱 서정적으로 만들었다.
커피 한 잔을 들고 창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 것만으로 행복한 날, 사랑하는 사람과 두근거리는 전날의 만남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게 되는 날, 그냥 일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 충만감을 느끼는 날이 있다. 그럴 때 휘진의 노래를 들어보자. 당신의 소박한 삶은 더욱 행복해질 것이다.
아, 만약 당신이 그런 소소한 여유가 없는 일상을 산다면 그럴수록 휘진의 노래를 들어보라. 3곡을 다 들어야 10분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그 10분이 당신의 건조한 삶에 상쾌한 바람 같은 여유를 불어넣을 것이다. 소소한 행복으로 가득한 날을 위해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할 것이다.
프로듀서: 박윤우
노래: 휘진
기타: 박윤우
VIOLIN: 한지연, 윤지영
VIOLA: 변정인
CELLO: 김영민
편곡: 박윤우(기타), 김은영(현악)
믹싱, 마스터링: 홍지현
녹음: 이레 스튜디오(압구정)
SPECIAL THANKS TO 권진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