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희 [Nocturne In]
정식으로 피아노를 배운 지 얼마 안 된 14살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음표들을 어찌할 줄 몰라 밤을 새워가며 손으로 정성스럽게 악보를 그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피아노로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은 가슴 터질 듯이 사모하며 배웠던 쇼팽의 몇몇 곡들과 어릴 적 배운 동요 몇 곡이 전부였습니다.
피아노가 너무 좋아서 가족과 떨어져 십 대에 떠났던 유학시절은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았지만, 그 시절 피아노를 전공하면서 더 깊이 알아가던 쇼팽의 음악과 가족과 조국이 그리울 때 흥얼거렸던 동요들을 합쳐 이번에 ‘Nocturne In’의 앨범으로 발매하면서 어릴 적 악보를 이렇게 다시 찾아보니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었음에,
어린 시절 쇼팽의 음악을 공부할 수 있었음에,
동요를 흥얼거리던 그 감성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음에……
클래식을 전공하고 탱고와 재즈에 영향을 받은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정진희가 동요들을 편곡하고 피아노로 연주한 앨범이 'Nocturne In'입니다.
오랜 유학생활로 인해 조국에 대한 깊은 향수와 그리움을 어릴 적 불렀던 동요들을 떠올리며 낭만파 시대 음악가인 쇼팽의 야상곡(Nocturne)이 담고 있는 영감을 바탕으로 다양한 음악 장르를 결합하여 편곡한 크로스 오버 뮤직들로 본 앨범에서 피아노 연주와 함께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앨범에서 소개하는 곡들은 하나의 악기로 표현될 수 있는 극대화된 서정성과 여러 가지 음악적 특성이 혼합되어 감성적이고 짜임새 있는 피아노 솔로 연주의 진수를 느끼게 할 것입니다.
'Nocturne In' is an album played on the piano and arranged by composer and pianist Jin-hee Chung, who majored in classical music and was influenced by tango and jazz.
It is inspired by romantic-era musician, Chopin, whose Nocturne pieces helped mold Jin-hee’s deep nostalgia for music from his childhood after living abroad for so long.
All the songs introduced in this album are the perfect representation of an emotional piano solo performance combined with maximized lyricism through various musical characteristics.
내게 첫 음악은 아버지가 불러주신 동요들이었다. 당신이 좋아했을 [과수원길], [섬집아기] 같은 노래를 불러주실 때 내게 노래만 스며들지는 않았다. 노래에서 샘솟고 아버지를 거쳐 전해진 아련한 슬픔. 아련한 슬픔은 이제 그리움이 되었다. 많은 이들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오래 전 첫 노래의 기억은 그 노래를 일러준 이의 추억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노래가 전해준 정서는 감정의 기저에 잠복해 있다가 이따금 일렁이며 파도친다.
오리엔탱고에서 활동했던 피아니스트 정진희의 음반 [Nocturne In]은 바로 그 노래들로 추억을 호출한다. [고향의 봄], [아기염소], [엄마야 누나야], [나뭇잎배], [섬집아기], [찔레꽃] 등의 동요를 다시 연주한 음반은 반가움과 그리움을 함께 선사한다. 어린 날 처음 들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숱하게 부르고 들었을 노래는 단지 노래로서만 살아있지 않는다. 그 노래들은 삶의 순간순간으로 스며들어 추억의 BGM이자 추억 그 자체가 되었다. 그러므로 동요라는, 그러니까 어린이 노래라는 말은 이 노래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 노래들은 어린 날 듣고 계속 듣고 부르며 삶이 된 노래들이다. 적어도 한국인들에게 이 노래들은 삶이 된 노래들이고, 민요처럼 구전되는 노래들이다. 서로 다른 이들의 수많은 사연으로 채워진 만인의 노래이다.
그런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이 노래들을 연주해온 피아니스트 정진희는 이 노래를 몰랐던 이들도 똑같은 감동을 받는 모습을 보았다 한다. 노래가 삶이 되지 않은 이들에게도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노래 자체의 울림 때문이리라. 이 노래들은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선율과 단순한 구조만 가지고 있음에도 잔잔하게 밀려 들어와 노래로 물들인다. 마음은 노래로 물들여져 비로소 그리움과 해맑음을 알게 된다. 더 이상 강변에 살지 않고, 나뭇잎배를 만들지 않는다 해도 마음이 다르지 않다. 마음은 늘 맑고 깊고 외롭고 그립다.
피아니스트 정진희는 맑고 깊고 외롭고 그리운 마음에 따스한 연주를 선사한다. 이미 숱하게 들어 알고 있을 노래를 다시 연주하는 정진희는 간결한 연주로 노래가 담지한 정서를 순도 높게 재현한다.
그러나 정진희는 원곡이 이미 완성한 아름다움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원곡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을 자신의 재해석으로 변주하면서 자신의 음악으로 변화시킨다. 원곡의 의미와 가치를 전복하지 않고 존중하면서 진행하는 재해석은 원곡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면서 정진희에 주목하게 한다. 섬세하고 클래시컬한 터치와 기품 있는 연주, 자유로운 재즈의 방법론을 혼용한 덕분에 옛노래는 정진희의 음악으로 완성된다. 이렇게 노래는 다시 이어지고, 오늘도 음악은 아름답다.
- 평론글 (서정민갑 : 대중음악의견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