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쿠킹버그 [Depart]
내 첫사랑의 기억은 영 구리다. 정확히 좋아하게 된지 100일 째였다. 나는 부적마냥 매일 달력에 하루씩을 더해가며 이 무게가 그에게 닿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제대로 차였다. 아아 내 생애 첫 번째이자 마지막 고백의 기억은 쓰구나. 갈 곳이 없던 난 그를 기다리던 놀이터에 다시 돌아가 온 마음이 퉁퉁 부을 만큼 울고 들어갔는데. 알다시피 적립했던 마음을 죄 바닥에 쏟아내기에 놀이터는 퍽 안성맞춤이다.
그렇게 시작이 놀이터라서 그런가. 이전부터 힘든 일이 있으면 나는 집 앞 놀이터 그네에 앉아서 다리를 달랑거리곤 했는데, 대개 그 놈의 사랑타령이었다. 청소년 시절의 나, 스무 살의 나 그리고 이 이후의 나도 머리가 아파오면 홀로 놀이터를 찾았다. 텅 빈 놀이터에는 온갖 철학이 있었다. 질풍노도의 시기. 여느 철학가처럼, 고독과 함께 내게도 사유의 시간이 다가왔다. 그네가 허공을 배회하던 횟수만큼 나는 자연스레 내 사랑에 몰두할 시간을 가졌다. 아마 그 즈음 일거다. 내가 사랑에 끙끙 앓고 있던 때, 비슷한 소리로 삐걱거리는 시소를 보며 사랑은 시소와 같다고 생각했다. 무게가 더 무거운 사람은 항상 아래에 있고 보다 가벼운 이는 위에서 내려다보겠지. 내가 아래에 있을 땐 무게를 줄여보려 애를 썼고, 위에 있을 때면 그러한 애타는 마음의 방관자가 되어 그저 바라보기만 했는데. 사랑은 이따금 잔인해서 각자의 위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건너편 사람과의 높이 차가 드러날 때면 그 중력만큼의 슬픔도 함께 왔다. 다이어트는 항상 어려웠고 그건 비단 몸 아닌 마음도 그랬다. 아무리 울어도 내 무게가 줄어들진 않았고, 아무리 발을 굴러도 내 위치는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같은 높이가 가장 좋을 텐데, 알다시피 우리에게 오는 사랑은 많은 경우 그렇지 않다.
스타쿠킹버그의 이번 앨범은 더 무거운 사람들의 노래이다. 어떤 이는 위를 바라만 보는 것에 대해 가슴의 뻐근함을 느끼고, 어떤 이는 그 사람에 시야에 들기를 섦게 바란다. 어떤 이는 같은 무게가 되고자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고, 어떤 이는 변해버린 위치에 당황한다. 이유와 상관없이 이들은 모두 공통점을 가진다. 무겁다는 것. 그니까 더 정확하게는 같은 무게가 아니라는 것.
언뜻 보면 삶은 어째 무거운 사람들에게 더 박한 듯 보인다. 그러나 순도가 높은 마음이 무게가 높은 법, 더 무거운 사람은 그만큼 더 순수하기 마련이다. 보석도 순도가 높은 것이 비싸듯 결국 지나온 기억 속 빛을 발하는 건 고순도 마음이렷다. 위에서 언급한 나름 사랑 철학가가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무거운 사람이 삶에서 그만큼의 무게를 얻어간다. 기특하게도, 스타쿠킹버그는 단순한 공감을 넘어 연애 방어기제로 더 이상 무겁지 않은 오늘날 많은 이들에게 잊혀진 무게를 상기시키기까지 한다. 잊고 있던 순수가 되살아난다. 담담하게, 때론 밝게. 무거운 이들의 목소리가 마냥 슬프지만은 않은 건 그 때문이다.
그래서 이 앨범은 모두를 위한다. 더 무거운 사람들에겐 공감을, 더 가벼운 사람들에겐 이해를, 무게를 잊은 사람에게는 다시 한번 순수를. 이를 전해주고자 노래한 스타쿠킹버그를 위해 건배. 무거운 사람들을 위해 건배. 이 앨범을 위해서 다시 한번 건배.
1. "Look"은 바라보는 이의 노래이다. 가지고 싶으면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사랑은 언제나 눈에서 출발한다. 사랑에 빠질 때 바라본다는 건 가장 처음이자 가장 소극적인 구애의 방식이며 감정의 확인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내 시선을 가져갈 때면 나는 곧이어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음을 알아챘다. 눈길은 눈의 방향이자 길이었고, 그 길의 막다른 곳에는 으레 그가 있었다. 그는 그 이후 내 시선의 목적지가 되었다. 그의 목적지 역시 나라면 좋으련만.
우리는 언제나 사랑하는 이의 시선을 갈구할 수 밖에 없다. 사랑은 서로를 마주봄에 있기 때문이다. ‘In our time 이 시간 너와 나만 가는 시간이어라.’ 너를 담고 있는 나와 네가 담고 있는 나. 끝도 없이 비추어지는 서로. 이 무한함이 시간을 뛰어 넘을 때 그제서야 시간은 비로소 ‘우리’의 것이 되리라. 이보다 더 먹먹하게 가슴 뛰는 일이 있을까.
보컬 오하윤
작사 박신원
작곡 박신원
편곡 박신원
드럼 은주현
베이스 원훈영
기타 박신원
코러스 오하윤 김병헌
2. [한잔사이] 커피 한잔해요. 밥 한번 먹어요. 영화 한편 보죠. 술 한잔 할까요. 상대와 가까워지고 싶을 때 한국인들이 으레 하는 관심의 표현일 것이다. 고로 많은 연애 예정자 혹은 커플(진)들은 속칭 이런 “한잔사이”다. 어쩌면 앞으로의 과정 중에서 가장 설레는 시기일지도 모르는 이때, 한잔 두잔, 차곡 차곡 마음이 쌓인다. 그렇게 커피숍 도장도 다 채웠다. 한 잔 하던 사이는 어느새 딱 커피한잔 정도의 거리감을 남겨둔 사이가 되었다. 영화 한편 보던 사이에서 이제는 영화 한편 찍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우린 사귈 사이’. 고백, 해주면 안되겠니?
보컬 이혜지 of 연애할시간, 오하윤
작사 이혜지 박신원
작곡 이혜지 박신원
편곡 박신원
드럼 은주현
베이스 원훈영
건반 임수혁
기타 박신원
프로그래밍 은주현 박신원
코러스 이혜지 오하윤 박신원
3. [그대 나에겐] 점화된 불은 항상 무언가에게 화기를 전달하고 싶은 법이다. 그건 비단 촛불부터 가스레인지를 넘어 모닥불에 이르기 까지 모두 같다. 그래서 노래 속 그녀는 조용히 애만 태운다. 애꿎은 가스레인지는 따닥 거리고, 가슴 한 켠은 따끔거린다. 이름 모를 그는 언젠가 그녀에게 틀림없이 온기를 주었을 것이다. 불을 그 한번의 찰나에 생겼다. 그렇게 태어난 불은 홀로 타오르다가도 가끔 사무치게 누군가를 끌어안고 싶었다. 어젯밤 네가 준 미소 한 점이 마치 우리가 잘 될 근거와도 같이 느껴지는 그럴 때면 점화에의 욕구는 강렬했다. 네 가슴에도 이 불을 주고 싶어. 그러나 활활 타오르는 만큼, 날 애정 할지도 모른다는 먼 희망마저 태워버릴까 아마 그녀는 절대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부스러기를 안고 살아가는 이가 그마저도 없으면 정말 바스라질테니.
꾹꾹 눌러댄 감정들로 누군가의 가슴에 굳은살이 배겨 올 때, 그 마음이 "그대 나에겐"가 되었다.
보컬 모델 고소현
작사 안현주 박신원
작곡 안현주 박신원
편곡 안현주 박신원
드럼 은주현
베이스 원훈영
피아노 안현주
기타 박신원
코러스 안현주
4. [어떤말] 내 사람이 다른 이성과 다정스레 함께 있는 모습을 본다면? 믿어왔던 마음이 무너질 때면 평상시의 이성체제도 무너지기 마련이다. 머리도 가슴도 혼란스러운 그럴 때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떤 말’이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뚜렷하게 정해진 게 없다는 뜻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에 따라 뚜렷해질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 언뜻 가사와는 다르게 경쾌하리만큼 느껴지는 멜로디는 되려 부르는 사람의 감정에 집중하게 해준다. 허탈감, 미움, 그리고 혼란스러움. 그러나 그래도 나이길, 설명해주길, 네겐 나뿐이라는걸 이해할 수밖에 없게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주길.
보컬 이혜지 of 연애할시간
작사 박신원
작곡 박신원
편곡 박신원
드럼 은주현
베이스 원훈영
건반 임수혁
기타 박신원
프로그래밍 은주현 박신원
코러스 이혜지
Production producer 김병헌
Photo by bluebai
designed by zingabin studio
All song mixed by 김보성
at Monkeymusic studio
All song mastered by 도정회 at soundmax
Produced by 박신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