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ormity"
반복되는 모든 것은 시간의 굴레에 순응되어진다.
나의 손가락은 대게 둥그런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고 있는 손은 마치 무언가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흐트러짐 없는 손가락은 잔을 잡거나 테이블에 무심코 내려놓을 때에도 유지 된다. 이러한 손은 타인으로부터 뜻하지 않은 칭찬을 불러일으켜 나를 당황스럽게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를 기쁘게 한다.
사실 내 손가락은 그리 예쁘지 않다. 길지도 가늘지도 않은 손가락은 자칫 투박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러한 손의 모양은 지금까지 반복되어진 연습을 통해 갖추어진 것이다. 악기를 연주하는데 필요한 자세에 익숙해져 본래의 모습보다 더 아름다운 모양새를 덧입게 된 것이다. 악기를 연주하는데 따르는 훈련의 과정은 이와 같은 긍정적인 모습 외에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내 앞으로 굽은 어깨는 길을 걸을 때조차 움츠러들어 펴지지 않고 몸보다 앞서 나간 목은 자신이 얼마나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지 의식조차하지 못한다. 꼿꼿이 펴고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도리어 불편한 나는 반복되어진 연습 때문만은 아니리라. 앞으로 말린 어깨와 일자로 뻗은 목은 상황에 순응한 나의 모습으로 삶의 굴곡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지나온 시간 속에 수없는 낮과 밤을 보내고 계절을 겪었다. 그간 지내온 세월의 열기와 빛의 향연은 내가 가진 본성을 다채롭게 드러내주었다. 그 가운데 나는 내게 맞는 옷을 갖추어 입기 위해 욕심도 부리고 도에 맞지 않는 선택을 묵인하기도 하였다. 크고 작은 사건의 주기적 등장에 자책하며 번복하기도 하여 자연스레 내 몸에 어울리는 길로 접어들었다.
몸이 익어 행하는 일은 생각의 과정을 필요로 하진 않는다. 나의 손이 눈을 쫓아 동물적 감각으로 누르는 건반과 같이. 나의 통상적인 행위는 무엇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가? 나의 몸은 어디에 길들여져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예정하신 주의 뜻 가운데 자녀 삼아 주셨는데 나는 의에 길들여져 있는가? 아니면 죄에 길들여져 있는가? 나는 주님 앞에 어느 때에 나아가는가? 주님 안에 거하기는커녕 그분께 나아가는 때를 묻고 있는 내 모습에 차마 고개를 들기가 어렵다.
'때가 찬 경륜'을 위해 우리에게 맡기신 일은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지혜의 깊이가 더하여 지고, 예정하심 가운데 하나의 기업을 이루게 될 것이라 믿는다. 주께서 세우신 사람의 삶이라는 기업은 그 크기와 상관없이 소중하고 귀하기에 버려두지 않으시며 무너지지 않도록 내 고뇌 가운데 찾아와 말씀하여주신다. 그리고 보다 나은 길, 나아가 주의 길 위에 서도록 내게 말씀하고 계신다.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한 나의 귀와 눈이 주님의 음성 듣기에 익숙하여 지길 기도한다. 그리고 아버지의 말씀에 순응하여 그의 영광과 찬송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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