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XX' [Fantasy]
누구에게나 판타지는 존재한다. 많은 사람은 닿고 싶은 것들을 로망, 판타지라는 단어로 풀어내곤 한다. 판타지의 사전적 정의인 ‘환상’으로 들어간다면, 판타지는 더욱 멀어진다. 환상이란 이뤄질 수 없는 상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이루어질 수 없으므로 가능한 순간들이 생겨난다. 백인 전용 버스 좌석, 백인 전용 식수대 등이 존재하던 미국에서 최초로 TV에 ‘유색인종’이 등장한 것 또한 수백 년 후를 다루는 공상과학 드라마, <Star Trek>에서였다.
19XX는 올해 초, 영국의 전자 음악 듀오 디스클로저(Disclosure)의 오프닝 공연과 서울과 부산에서 열린 워터밤 페스티벌(Waterbomb Festival)와 같은 큰 공연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첫 싱글 “Lights”는 초중반 부에서 몽환적인 신시사이저와 잘게 쪼개진 하이햇 리듬 그리고 각종 이펙터로 일종의 공허함을 드러내고, 후반부의 확장으로 듣는 이에게 ‘빛’을 서서히 보는 듯한 감각을 선사한다. 그들의 새로운 싱글 [Fantasy]는 그 빛 속에서 시작한다. 두 곡의 싱글에서 구축된 세계관은 특정 배경이나 시대관을 겨냥하지 않는다. 그저 어딘가 존재할 것 같은 가상의 세계에 가깝다.
19XX가 만든 사운드의 목적은 결국 듣는 이를 19XX의 가상의 세계로 끌고 가기 위함이다. 빛을 지나 환상으로 듣는 이가 빠져드는 순간, 서문에서 언급했듯 무엇이든 가능한 공간이 열린다. 작게 본다면 닿지 못할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장면이 될 수도, 크게 본다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 펼쳐질 수도 있는 것이다. 후렴에서 “나는 당신의 환상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19XX의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강렬한 베이스 위에서 반복되는 이 외침은 다르거나, 이뤄질 수 없다고 인식되었던 무언가가 바뀔 수 있다는 환상을 끌어낸다.
그렇지만, [Fantasy]와 19XX는 이 곡에서 확실한 결말을 들려주진 않는다. 곡은 후반부로 갈수록 절정에 치닫지만, 결국 곡의 마지막은 시작을 열었던 기타가 장식한다. 이해가 조금 어렵다면, [Fantasy]의 음반 아트워크를 보자. 네 겹의 매듭은 풀리지 않을 듯하지만, 각 매듭을 연결하는 줄은 당장이라도 끊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네 겹의 매듭이 환상이고, 연결된 줄이 실현이라고 한다면, 결말지어지지 않은 양쪽 줄은 듣는 이에게 새로운 무언가의 존재를 상상케 한다. 결국, 19XX가 이야기하는 ‘환상’은 듣는 이의 몫이다. 누가 알았겠는가.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법적으로 철폐될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대통령이 될지, 그리고 남북한의 대표가 서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말이다.
글 ㅣ 심은보(프리랜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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