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NGIN 행인은 2017년 팀 Grack Thany의 컴필레이션 앨범, [8luminum]을 통해 데뷔한 한국의 프로듀서이다. 당시 행인은 노이즈와 드럼 머신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곡, “폭파” 단 한 곡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폭파”에서 파생된 분위기는 그 뒤 이어지는 랩 트랙들의 전체적인 기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팀에서 떠난 뒤에도, IDM, 글리치, 노이즈 등에서 영향받은 음악을 꾸준히 추구했다. 다양한 해외 레이블과 자신의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여러 차례 음악을 발매했으며, 각종 오리지널, 리믹스와 믹스셋을 공개, 비트 사이퍼에 참여하며 자신의 디스코그래피를 쌓아나갔다. 근 몇 년 사이 가득한 그의 사운드클라우드는 이러한 활동의 반증이다.
[MAD ZACH COUNTRYMAN]은 행인의 첫 EP이다. 해외에서는 여러 차례 음반이 나왔지만, 국내에서는 약 2년 만의 발매이기도 하다. 전자음악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앨범 제목 속 ‘Mad Zach'라는 이름에 눈길이 갈 듯하다. Mad Zach는 독일의 전자음악 프로듀서이자 사운드 디자이너의 이름이다. 행인은 프로듀서, 사운드 디자이너인 Zach Countryman이 그의 샘플팩들을 보내주었으며 이에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해당 앨범을 제작했다고 한다. 여기에 프로듀서 Mad Zach의 이름이 더해져 만들어진 제목이 바로 [MAD ZACH COUNTRYMAN]이다.
앨범은 총 10곡으로, 오로지 Zach Countryman의 샘플팩으로 제작한 오리지널 트랙 3곡과, 행인의 데뷔 트랙 “폭파”의 VIP (Variation In Production) SYUNMAN (션만)의 스크래칭이 더해진 버전이 합해져 총 4곡, 그리고 행인 주변인들의 리믹스로 채워졌다. ‘MAD’는 행인만의 사운드 디자인 메커니즘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IDM을 연상케 하는 초반부가 끝나면 귀를 울리는 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위로 쌓이는 신시사이저는 듣는 이에게 상승감을 느끼게 하고, 그 분위기는 자연스레 2번 트랙, “PAROIKOUS”로 이어진다.
“PAROIKOUS”에는 ‘HNGIN’의 사운드 시그니처를 제외한다면 이번 앨범에서 유일하게 목소리가 수록됐다. 피처링에는 Y2K92 simo, Y2K92 jibin이 참여했다. 일반적인 힙합과는 다른 곡의 작법, Y2K92 simo, Y2K92 jibin의 독특한 가사와 플로우 디자인 등, 곡은 레프트 필드 힙합의 형태를 띠면서도 듣는 이에게 쉽게 다가간다는 특징을 가진다. 2000년대 이후 음악에서 소위 말하는 ‘댄서블함’은 듣는 이에게 있어 꽤 중요한 요소인데, “PAROIKOUS”는 드럼과 랩, 두 가지 리듬 섹션에 담긴 매력으로 이를 해결했다. 자기주장이 강한 비트와 이에 지지 않는 피처링의 활약까지, “PAROIKOUS”는 프로듀서와 플레이어의 좋은 협업의 예시다.
앞선 세 곡을 지나면 Subp Yao, Vhsceral, Gisulbu, IOAH의 리믹스가 이어진다. 이들은 HNGIN의 곡을 베이스 뮤직에 가까운 방식으로 재해석했으며, 실제로 클럽에서 듣기 좋을 법한 음악들이 연속으로 재생된다. 이후 8번 트랙 “ZACH COUNTRYMAN”에서 바톤은 다시 행인에게 돌아온다. 얼핏 들으면 리믹스의 연속이라고 느낄 수도 있으나, 행인은 “PAROIKOUS”의 도입부에 사용된 신시사이저를 다시 한번 사용하며 듣는 이에게 자신의 차례임을 분명히 알린다. 곡이 앨범과 동명이라는 점과 실제로 Mad Zach의 음악을 연상케 하는 사운드로 디자인되었단 점에서, 이러한 작법은 HNGIN이 의도한 바라고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어지는 HØST와 Zimbu의 리믹스는 원곡의 그루브를 유지하고 그들만의 개성과 색채를 드러내며 앨범의 기승전결을 완성한다.
분명 [MAD ZACH COUNTRYMAN]은 친절한 앨범은 아니다. 사운드는 앨범 내내 듣는 이의 귀를 울리고, 행인은 이러한 질감을 즐기는 것처럼 들린다. 익살스러운 앨범 아트워크를 떠올린다면 이는 더욱 분명하게 느껴진다. 리믹스로 참여한 이들 또한 이러한 점을 고려해 곡의 방향성을 베이스 뮤직으로 구성했을 것이며, 행인이 이를 앨범에 수록한 점 역시 이러한 점을 뒷받침한다.
한편으로는 이 앨범의 시작이 애초부터 대중이 아닌 매니아 혹은 행인 본인의 만족을 위해 만들어졌을 것 같기도 하다. 앨범은 강한 베이스와 독특한 질감의 소리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분명한 맛을 전달한다. 비록 열 곡 중 4곡만이 행인의 곡이지만, 나머지가 그의 곡을 리믹스했다는 점에서 결국 [MAD ZACH COUNTRYMAN]에서 느껴지는 즐거움은 온전히 행인의 공이다. 그의 다음 관심사가 궁금하다면, 꾸준히 행보를 지켜보자. 듣는 이와 제작자의 취향이 맞는 순간, HNGIN 행인은 분명히 또 다른 맛의 [MAD ZACH COUNTRYMAN]을 들려줄 터다.
글 ㅣ 심은보, 프리랜서 에디터 (shimeunboss@gmail.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