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형 아티스트, 형선의 두 번째 EP [Agfa.]
해마다 훌륭한 재원이 등장하고 있는 한국의 알앤비/소울 신. 이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형선이라는 아티스트를 주목했던 건 프로덕션의 결을 해치지 않는 보컬 덕분이다. 형선은 EP [DAMDI]에서 여러 프로듀서의 트랙을 짙은 음색의 보컬로 한 데 아우르는 건 물론, 곡의 무드를 극대화하는 자신의 재능을 증명했다. 첫 작품으로 개성과 범용성 두 가지 툴을 모두 갖췄음을 증명했으니. 많은 이들의 러브콜이 잇따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후 그는 신디사이정(syndasizung), 스윔래빗(swimrabbit), 비앙(Viann) 등 개성 뚜렷한 음악가들과 협업을 이어오며 자신의 음악 스펙트럼을 차츰 넓혀왔다. 그리고 마침내 형선이 본인의 두 번째 솔로 EP [Agfa.]를 발표했다.
EP [Agfa.]는 크게 두 가지 감상 포인트가 존재한다. 첫 번째는 EP에 담긴 음악이다. 형선은 이번 EP의 트랙마다 다른 프로듀서들과 호흡을 맞췄다. 이 덕분인지 EP는 지난 [DAMDI]에서 확인할 수 있던 네오소울 기반의 프로덕션, 사운드클라우드 등지에서 다시 유행한 로우파이 사운드 등 알앤비/소울의 세부 장르와 스타일을 한 데 확인할 수 있다. 재미있는 건 트랙마다 느껴지는 오마주와 재해석이다. 이를테면 “두려워”에서 엇나가 들어가는 리듬 파트나 “If I ain’t got u”의 타이틀 그 자체가 있다. 그리고 “WHY!” 역시 90년대 알앤비의 다이나믹한 곡 구성과 무드를 과하지 않고도 미니멀하게 재해석한 센스를 엿볼 수 있다.
두 번째는 트랙 속 이야기를 심화해 나가는 형선의 보컬이다. 이번 EP의 주제는 알앤비/소울의 근원적인 테마라고도 할 수 있는 사랑이다. 얼핏 보면 단순한 주제인 거 같지만, 사랑에는 설레임, 증오, 체념 등 다양한 감정이 존재한다. 형선은 그런 다양한 사랑의 순간들을 트랙마다 자신의 보컬로 섬세히 그려낸다. 대표적으로 인트로 “두려워”에서는 숨소리 가득하고 떨리는 듯한 보컬로 새로운 사랑에 대한 두려움을, “첫 만남”에서는 분명한 톤의 보컬로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당돌함을 그려낸다. 특히 “Say that i luv u”에 담긴 웨이브투어스(wave to earth)의 김다니엘과 함께 둘의 보컬은 EP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달콤하고도 극적이다.
형선은 프로덕션의 무드와 텐션을 끝까지 끌어가는 방법을 알고 있던 음악가다. 여기에 그는 EP [Agfa.]에서 작품 속 이야기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디테일한 면모와 함께 한층 넓어진 음악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형선이 앞으로 어떤 음악을 들고 나올지 아직 알 수 없지만, EP [Agfa.]는 분명 형선의 다음 행보를 충분히 기대하게 만드는 멋진 결과물이다. 그런 만큼 많은 이들이 이번 EP를 통해 형선이라는 이름의 음악가를 기억해두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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