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김치]
무대엔 한 남자가 앉아 있다.
나이든 그의 모습엔 패기보단 연륜이 용기보단 지혜가 엿보인다.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자 기타 반주가 시작되고
그는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숨 쉬듯 노래를 시작한다. 제목은 김치.
우리 대중음악에서 언더그라운드라는 표현을 쓴다면 가장 어울릴 뮤지션, 정형근의
새 노래 “김치”는 영국 뮤지션 스팅의 [the last ship] 앨범을 떠올리게 하는 곡이다.
스팅은 이 앨범을 통해 연극의 음악감독으로서 데뷔를 하며,
그의 어린 시절 추억이 어린 영국 북부의 어느 조선소를 그리고 있다.
음악은 당연히 매우 뮤지컬적이며 나래이션 부분이 많이 포함된 무대음악이다.
이런 장르의 음악을 본인의 정규 앨범으로 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인데
여기 우리 곁에도 그와 같은 뮤지션이 있다.
물론 그에게 이런 스타일의 음악이 새롭거나 놀라운 도전은 아니지만
특히 이번 곡 “김치”는 기존의 작품에 비해 유난히도 연극적이다.
마치 한편의 드라마나 연극 무대를 보는 듯한 가사의 흐름과 창법은
듣는 이에게 공감각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한 식구가 모여 있는 소박한 밥상 그리고 그 맛과 소리들,
어머니의 옷가지에 배어 있는 음식 냄새까지 코끝에 올라오는 듯한 이 곡은
음악과 보컬이 다소 분리되어 흐른다.
때로는 반주를 무시하는 듯한 그의 읊조림은 노래이기도 하며 대사여서
노래를 듣는 다기보다는 이야기를 듣는 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7분이넘는 길이의 곡에는 그래서 하나의 씬 Scene이 담겨있다.
11월 중순쯤이면 늘 봐오던 풍경. “찬바람이 불면” 이란 가사처럼
그 시간 그 계절로 돌아가 고향집 앞마당에서 고개를 들어
파란 하늘을 쳐다보는 한 남자를 우린,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노래엔, 그의 읊조림엔 그 바닥을 알 수 없는 낮고 슬픈 울림이 있다.
정형근만이 가진 그 쓸쓸하고 두꺼운 음색은
그 누구도 따라하기 힘든 톤으로 노래에 스며든다.
특히 이 곡의 끝부분에서도
그런 창법은 잘 살아서 노래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냄새와 색이 묻어날 것 같은 날것의 가사와 낮은 읊조림,
그리고 가식 없는 창법은 그의 노래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이자 힘이다.
김치는 오랜만에 듣는 긴 노래이고
한편으론 짧은 이야기이자 무대이다.
고 민석 (전sbs pd)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