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설득하는 데에 굳이 극단적 예시는 필요 없어요 이 음식 남기면 못써 저기 아프리카 애들은 먹고 싶어도 못 먹어 같은 거요 비겁하잖아요 난 그런 예시에 등장하고 싶지 않아요 그것도 하기 싫은 누군가를 위한 동정적인 역할은 죽어도 싫어요 내가 한번 아니라고 말한 걸 뒤집고 싶다면 나보다 고집이 세야 해요 나보다 고집이 세고 나보다 겁이 없고 나보다 자신이 있고 나보다 정이 없고 미련도 없어야 해요 아니라고 아니라고 뻐팅기는 나를 남보다 못한 눈으로 매몰차게 놓아버려야 해요 그제야 나는 비로소 아니라고 아니라고 울며 빌며 돌아갈 거에요 그렇지 못한 사람을 나는 귀신같이 알아봐요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연기를 해도 티가 나요 정말로 그런 사람의 눈을 한 번이라도 본다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어요 남보다 못한 눈, 그 차곡차곡 곱게 쌓아 올린 우리를 단 한 줌의 작은 화상에도 모조리 내동댕이쳐버릴 수 있는 그 남보다 못한 눈, 그 눈은 깊게 사랑에 빠지기 전에는 발견하지 못해요 그 눈은 평소에는 따듯하고 상냥하고 무슨 말이든 무슨 먼지든 무슨 바람이든 무슨 바늘이든 다 받아줄 것 같거든요 그 눈은 깊게 사랑에 빠져 이제 이 사람을 다 알았다 싶을 때 비로소 만날 수 있어요 그런 눈을 만나면 꼭 도망치세요 그런 눈을 본다면 꼭 첫 번째에 도망가세요 그 눈은 한 번 견뎌내면 도망갈 수 없어요 한 번 견뎌내면 두 번, 두 번 견뎌내면 세 번, 세 번 견뎌내면 나는 사라지고 누군가만 남아요 나는 사라지고 누군가의 예시만 남아요 나는 동정을 요하는 누군가가 되어 누군가의 위안으로 남아요 비겁하잖아요 당신은 당신으로 남아요 그런 눈을 만나면 도망가세요 그런 눈을 본다면 도망치세요..
그립고 아름다운 모든 것이 옳을 순 없다 나는 더이상 민들레 씨를 꺾을 수 없다 불을 수 없다 민들레 씨앗이 바람에 실려 퍼져나가는 잔향을 들을 수 없다 꽃이 져야 씨앗을 품는 민들레, 나는 생기 다한 이만 골라 꺾어 산산이 흩트려놓을 수 없다 모가지를 꺾어 승리에 보탬이 될 수 없다 죽어 찢겨 퍼져 밟혀야 달성하는 그 종의 기원을 나는 알고서는 도울 수 없다 알고서는 모를 수 없다 알고서는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차라리 더 알아 멀어지기로 한다 차라리 더 알아 멀어버리기로 한다 더 알면 더 모를 때처럼 알 수 있을지도 몰라, 살 수 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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