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 음악, 하나의 세계를 이루다 - 야광토끼 [KOSMOS]
2015년 8월, 미국의 유명한 코미디 쇼인 [Last Week Tonight]에서 한국의 음악가가 소개되었다. 인기 있는 토크쇼에서 한국의 음악가가 소개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더욱이 북미에서 케이팝 열풍이 불기 훨씬 전의 일이다. 이후 2017년, 미국의 리뷰 매거진 피치포크에도 같은 음악가의 싱글이 리뷰로 실렸다. 컨트리뷰터인 패트릭 세인트 미첼(Patrick St. Michel)은 “지금 (Now)”이라는 곡을 다루었고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는 몽환적인 신스팝’이라고 하며, ‘음울한 일상에 대안을 제공하는 것이 이 음악가가 가장 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다양한 해외 매체를 통해 언급되며 일본은 물론 유럽과 미국에서도 활동해온 음악가, 바로 야광토끼다.
야광토끼는 2011년 첫 앨범 [Seoulight]을 발표했고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팝 음반상을 받았다. 2013년 EP [Happy Ending], 2016년 두 번째 앨범 [Stay Gold]를 발표한 야광토끼는 이제 세 번째 앨범 [KOSMOS]를 여러분께 선보이고자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9곡의 곡이 마치 다른 별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하는 그의 이번 앨범은 야광토끼라는 음악가가 지닌 하나의 세계를 온전히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시간이 지나도 사랑받을 수 있는, 지속해서 반복되는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한 야광토끼는 좋은 작품을 위해 긴 시간을 썼고, 그만큼 다채롭고 알찬 하나의 우주가 되었다.
우주(코스모스) 속 그리워할 어머니 지구의 존재, 혹은 새로운 곳에 가서도 그리워할 뒷산 언덕의 코스모스 같은 존재를 주제로 삼은 이번 앨범은 따뜻한 시티팝 느낌의 곡 “Call You”로 시작한다. 이 한 곡 때문에 앨범이 편안하게 전개될 것이라 생각하면 크게 잘못된 추측이다. 이후 등장하는 “Just The Way You Are”은 얼터너티브 알앤비에, “아파트”는 7~80년대 가요의 변형을 듣는 듯하며, 현실을 꼬집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그런가 하면 “Twilight”, “Bloom”처럼 야광토끼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일렉트로닉 팝 음악이 있고, 발라드 넘버의 “Let Me Be The One”이나 “그저 가만히 앉아서” 같은 곡이 앨범의 중후반에서 차분하게 중심을 잡는다면, “IDK”는 그 사이에서 좋은 조율을 이룬다. 다양한 소리의 구성을 통해 폭넓은 방식으로 인상 깊은 마무리를 만들어낸 곡 “Kosmos”까지, 단 한 장의 앨범임에도 들을 게 많아 즐겁다.
팝 음악이라는 하나의 키워드 아래 야광토끼는 꽤 다양한 형식을 풀어낸다. 그러면서도 본인이 지금까지 지켜온 자신만의 매력이나 팬들이 바라는 부분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 팝 음악에 정해진 규칙이나 합의된 미덕은 없지만, 앨범을 듣고 나면 이 음악가만의 팝 음악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팝 음악이 좋은 팝 음악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리라 생각한다. 앨범은 그 어느 곡 하나도 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걸 작품 자체가 증명한다. 여기에 도시 생활에서 오는 냉소와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만큼의 따뜻함 혹은 신나는 리듬도 있다. 세션 기용을 통해 완성도를 높인 것은 물론, 그 덕분에 야광토끼는 비로소 자신이 잘하는 것에 온전히 집중하는 듯하다.
처음 이야기했듯 야광토끼는 또 다른 케이팝을, 혹은 좋은 팝 음악을, 혹은 따분하거나 우울한 일상에 대안을 제시하는 그런 음악을 선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야광토끼는 변함없다. 하지만 변화도 있다. 훨씬 더 넓은 표현을 담아냈고, 그러면서도 더 직관적으로 그의 감정이나 온도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이름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한참을 기다려온 그리운 이름일 것이고, 나에게는 이 앨범을 먼저 듣고 글을 보탤 수 있어 즐거움이자 영광이었다. 많은 이에게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해본다.
블럭(음악칼럼니스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