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딛는 걸음마다 바람 가득한 소리 - egotrip의 싱글 "걷는다", "사막별"
음악인 이상협에게는 여러 가지 꼬리말이 있다. 다큐멘터리 '석굴암'에는 그에게 '아나운서, 시인'이라는 두 가지 직함을 선사했다. 가장 흔하게,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만나는 그는 아나운서라는 이름으로, 문학 계간지에 심심찮게 실리는 그의 시 끝에서는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러나 나는 오늘, 그의 가장 오래된 직함, '음악인'이라는 이름을 호출한다. 음악인 egotrip.
시인으로 등단하기 전, 아나운서로 방송에 입문하기 전 학창 시절부터 그는 노래를 만들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력파 싱어송라이터들의 등용문으로 알려진 9회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 동상으로 입선하며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 이후 2010년 egotrip 이란 이름으로 EP를 발매하며 꾸준히 음악을 창작 해왔다.
로드 다큐멘터리 '석굴암'은 이런 그에게 여러모로 영감을 주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을 제작하는 동안 그는 중국, 파키스탄, 인도,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미얀마 등 세계 각지를 떠돌며 드문 소식을 전해왔다. 때로는 문명의 한 가운데, 때로는 사막의 한 가운데에서 짤막하게 전하는 그의 소식에서는 길 떠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부유하는 바람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쉼없이 이곳 저곳을 걸으며 쓰고, 연주하고, 그리는 그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담겼다. 그리고 그 바람 소리가 듬뿍 담긴 두 곡이 슬며시 세상에 나왔다.
"걷는다"는 여행의 본령인 도보에 집중한다. 주술처럼 반복되는 노랫말 ‘걷는다'는 명백히 독백이다. 험준한 산을 오르지 않더라도 언덕과 오솔길, 거리와 고대의 사원을 오르내리고 굽어 걷듯이 노래는 힘주어 부르는 부분 없이도 적당한 고저를 오르내린다. 긴 도보의 과정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매번의 "걷는다"는 노독 가운데 수행과 같이 한 걸음, 한 걸음의 의미를 곱씹는다. 그 안에는 모래 바람 이 부는 것 같다.
"얼굴로 바람을 만지며 / 혼자 우두커니 풍향계처럼 / 둘러봐도 보이는 모든 것은 / 흘러가는 뒷모습의 날"과 같은 가사에서는 그가 시 쓰는 음악인이라는 것이 실감 난다. 함춘호, 윤건은 익히 알려진 그들의 모자람 없는 연주를 들려주고, Astro bits의 편곡은 이 곡을 비어있되 텅 비지 않도록 광활한 기운을 불어 넣는데 성공했다. 공간의 여행은 곧 시간의 여행이 되고, 낯선 공간에서 자신을 만나야 하는 여행의 본령은 이렇게 완성된다.
"사막별"은 간소한 기타 연주곡이다. 사막 한 가운데 고독한 무사의 칼처럼 배낭의 기타바 (Guitarbar)를 꺼내어 연주하는 뮤직비디오가 인상적이다. 그의 기타가 암시하듯, 국내에서는 이병우로 대표되는 핑거스타일의 연주곡이다. 다큐멘터리에 삽입된 장면을 돌이켜 보면 전혀 이물감이 없을 만큼 이 곡은 시공의 경계를 허무는 지점에 있다. 원초적이고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세련미를 유지하는 지점, 서구의 음계를 따르면서도 동양의 여백을 만들어내는 지점 말이다. 여행자는 이제 걷지 않고 멈추어 바람을 맞는다. 땀을 식히는 바람은 곧 명상을 깊게 하는 바람이 된다. 구도자가 된 여행자는 사막에서 어떤 별을 보았던 것일까. 그리고 도시의 깊은 밤, 작게 구획된 공간 안에 낮은 소리로 듣게 될 것이 분명한 이 곡은 어떤 바람을, 어떤 별의 기억을 환기시킬 것인가, 그리고 떠나게 종용할 것인가. 고대의 바람, 문명의 바람, 사막의 바람, 기억의 바람, 내 안의 바람을 모두 맞을 만한 때가 되었다면, 작은 방 안에서 이 음악을 틀어두면 될 일이다.
Review - 기린그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