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s Note
언제 깨어질지 모를 찬란한 순간이 있다.
그 순간 앞에 무너질 듯 비틀거리는 우리들의 찰나를 담았다.
그런 밤이라서 작은 빛 마저 눈부시고,
그런 밤이기에 작은 빛 마저 소중한 것임을.
구현 [밤, 빛]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기 마련이고, 빛이 있다면 어딘가 분명히 어둠도 있다. 앨범 제목 속 두 단어 ‘밤’(night)과 ‘빛’(light) 역시 상반된 이미지를 그리지만, 그 둘이 항상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구현은 데뷔 EP에서 그렇게 같은 곳에 존재하는 밤과 빛의 양면성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 같은 밤빛으로 너와 나 사이 관계의 모양을, 관계가 나타내는 지금 이 순간의 색깔을 비춘다.
[밤, 빛] 속 구현의 세계는 작은 빛으로 충분한 좁은 방이 되기도 하고, 한없이 넓은 우주가 되기도 한다. 여름을 품은 바다가 되었다가 빛나는 잔물결이 되기도, 현실과 다른 관념의 시공간이 되기도 한다. 노래의 가사는 때때로 모호하거나 우울한 현실을 담기도 하지만, 이를 대하는 그의 태도와 감성은, 뒤처지지 않고 그만의 템포를 찾아가는 음악은 밝고 따뜻하기 그지없다. 마치 어둠을 아름답게 비추는 빛처럼.
Tracklist
1. ‘밤빛’
한겨울 찬 바람은 비단 추위만 선사하지 않는다. 여름에 미처 몰랐던 온기의 소중함과 행복감을 비로소 알게 한다. ‘밤’과 ‘빛’이라는 상반된 대상의 만남은 구현에게 중요한 소재다. 우울한 가사에 밝은 비트를 얹은 이 노래의 역설적인 제목이 EP 제목과 동일한 까닭이다. 오로지 어두운 밤만이 창조할 수 있는 작은 빛의 공간들. 그것이 품는 낭만들. 주변이 온통 캄캄한 불안과 슬픔으로 얼룩진 밤, 사랑하는 이와 함께 나눌 한줌의 불씨를 찾는 마음으로
2. ‘위성’
사람과 사람 사이, 마치 서로 운명인 것처럼 마주하고도 가까워질 듯 가까워지지 않는 관계가 있다. 행여 누가 다칠까 떠나지도, 그렇다고 충돌하지도 못한 채 별과 위성이라도 되는 듯 같은 거리를 유지하고 같은 궤도를 맴돈다. 그러나 반복되는 비트와 가사, 관계의 공전 중에도 구현은 ‘밤빛’이 그랬던 것 은은하게 비치는 희망을 남겨둔다. “I can see your light when I’m around you.” 그렇게 노래는 춤을 추고, 하늘에는 별이 쏟아진다.
3. ‘여름결’
앞선 노래들이 관계의 시작을, 혹은 조심스러운 다가섬을 이야기한다면, ‘여름결’은 한창 헤엄 중인 관계의 여름을 다룬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나른하고 몽환적인 무드가 노래에 자욱하다. 부서지는 파도, 모래성과 조개 껍데기, 노을빛 하늘, 그리고 여름밤. 때때로 서로 다투고 지치기도 하지만, 여름에 다가선 이상 그것이 더는 중요하지 않다. 찬란한 여름의 시간이 흐르고, 두 사람은 짧은 순간이 영원이 되는 것을 꿈꾸며 서로를 유영한다.
4. ‘림보’
‘여름결’에서 꿈꿨던 영원한 시간은 ‘림보’에서 이루어진다. 영화 〈인셉션〉에는 꿈 속 가장 깊숙한 꿈의 개념으로 림보가 등장한다. 림보의 시간은 다른 어떤 현실이나 꿈보다도 느린 오롯이 그곳만의 시간으로 흐른다. “이게 아니면 영원은 어디에. 그저 꿈이라면 깨지 않게.” 그러나 ‘밤빛’이 어둠 속에서 빛을 포착했듯이 ‘림보’ 역시 찬란한 순간 속 한편의 두려움을 발견한다. “우리 갇힌 영원이 가끔 겁이 나. 휘청거리는 꿈일까 봐.” 조금씩 덜컥거리는 빈티지 사운드와 그의 떨리는 목소리가 꿈 같은 시간을 완성한다.
5. ‘윤슬’
순우리말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뜻한다. 이는 구현이 묘사하는 관계의 모양이자, ‘림보’의 불안을 달래는 위로이기도 하다. 영롱한 울림의 잔향, 지글거리는 노이즈가 물결의 반짝임을 대신하며, 두 사람은 꿈 속의 영원이 아닌 현실 속 영원에 머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