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주와 지인들, 이정선, 쿠마파크 [부평사운드vol.3]
VOL.3_SIDE A 이정선X윤병주와 지인들 ‘항구의 밤’
본인 스스로가 밝혔지만, 이정선 음악의 뿌리는 블루스다. 1970년대에 결성된 포크 그룹 해바라기의 멤버로, 베스트셀러가 된 기타 입문서 [이정선의 기타 교실] 때문에 대중에게 이정선은 포크 뮤지션으로 각인됐지만, 그의 음악적 본적지는 블루스다. 이정선의 음악적 진정성은 1980년대에 결성한 신촌 블루스를 통해 본격적으로 발현되었고 1990년에 발표한 솔로 앨범 [雨]에 수록된 ‘항구의 밤’은 자신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포크와 블루스의 모습을 모두 담고 있다. 2003년에 다시 리메이크했을 때는 포크와 블루스 외에도 트로트라는 입김을 불어 넣어 한국판 포크 블루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번에 리메이크한 ‘항구의 밤’의 열쇠는 [이정선의 기타 교실]로 기타를 독학하기 시작한 윤병주다. 노이즈가든과 로다운 30의 기타리스트 출신인 그는 ‘주위의 아는 사람들’과 함께 윤병주와 지인들이라는 그룹을 결성해 오리지널 ‘항구의 밤’에 밝은 빛과 생동감을 부여한다. 재밌어서, 해보고 싶어서 음악을 선택한 윤병주는 자신의 철학대로 그저 하고 싶어서 이정선의 음악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이정선의 관조와 윤병주의 겸손이 어우러진 ‘항구의 밤’은 오리지널보다 좀 더 일렉트릭 블루스적이고 좀 더 능글맞다. 이 긍정의 에너지 덕분에 노래의 외로운 감성은 ‘군중 속의 고요’처럼 더 슬프고 쓸쓸하게 다가온다.
고독을 여유로 승화하는 것은 계산된 기술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연륜과 경험이 바탕이다. 단 한 번도 메인스트림에 기웃거리지 않은 이정선과 올곧은 윤병주의 협업은 인생의 철학이 무엇인지, 삶의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조용하고 겸손하게 설파하는 속담과도 같다. 원곡과 이번에 부활한 ‘항구의 밤’은 불변의 진리를 확실한 진실로 만든다.
소승근 (음악평론가, IZ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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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_SIDE B ‘연안부두’ 쿠마파크
‘어쩌다 한 번 오는 저 배는 무슨 사연 싣고 오길래....’ ‘연안부두’는 인천의 노래다. 부산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포항의 ‘영일만 친구’, 광주의 ‘목포의 눈물’처럼 긴 시간 인천 시민의 애환을 담아내며 인천을 상징하는 노래로 함께했다.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부터 현재의 SK 와이번스까지, 인천을 연고로 한 프로야구단의 응원가로 긴 시간을 함께해온 이 노래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저자 박민규의 말처럼 당시 ‘스포츠와 아무 상관 없는 내용이지만 인천을 무대로 한 유일한 대중가요’였다.
‘연안부두’의 주인공은 1979년 김트리오다. 김트리오는 최헌의 ‘오동잎’과 윤수일, 희자매를 발굴하며 1970년대 말 대중음악계 유행을 선도한 영사운드 출신 안치행의 ‘안타기획’ 소속 팀이었다. 이들은 패티김의 첫사랑이자 미 8군 공연기 트럼펫 연주 자였던 베니 김(김영순)의 세 남매였고 김파, 김단, 김선이라는 독특한 외자 이름으로 기타, 드럼, 오르간을 연주했다. 당시 인기 밴드 데블스와 사랑과 평화 등 국내파 밴드와 달리 김트리오는 멤버 개개인이 미국에서 음악을 익힌 후 국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안치행이 작곡한 ‘연안부두’는 1970년대 말 [토요일 밤의 열기], 보니 엠(Bonny M)과 아바(ABBA)의 디스코 히트와 국내 유행하던 트로트 고고의 요소를 결합했다. 떠나는 배를 향해 손을 흔드는 짙은 이별의 정서는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히트로 익숙한 정서였지만 세계 유행에 발맞춘 전자오르간 연주와 삼남매의 탄탄한 연주는 신예 밴드에게 보편의 공감과 새로운 에너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선사했다. 흥겨운 펑크(Funk) 리듬과 트로트 멜로디 위 연안부두에 구전되어온 숱한 이들의 사연이 작사가 조운파의 언어로 다듬어지며 곡은 탄생과 동시에 한 도시를 대표하는 영광을 부여받았다.
2020년 부평구문화재단 문화도시추진단은 인천 부평구에 위치한 미군수지원사령부 애스컴(ASCOM) 미군 기지에서 활동한 우리 가수들에 바치는 음반, [부평 사운드(Bupyeong Sound)] 7인치 시리즈를 통해 ‘연안부두’의 재해석을 선보였다. 재즈와 힙합을 오가는 6인조 밴드 쿠마파크가 이 저명한 비애의 곡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바꿨다. 가창 없이 연주로만 진행되는 새 ‘연안부두’는 색소폰과 건반이 서로 절을 주고받으며 세련된 면모를 강조한다. 트로트의 ‘뽕끼’를 덜어내고 멜로디에서 진하게 묻어나는 이별의 정서를 새로운 형태로 가공하고자 했다는 밴드 리더 한승민의 설명이다. 출항을 바라보며 눈물짓는 것이 김트리오의 원곡이라면, 쿠마파크의 노래는 어둑어둑한 항구에 쓸쓸히 넘실대는 물결을 내려다보는 듯하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 IZM 편집장)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