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이전에 발매된 한국 영화의 OST 앨범은 잔존 개체수가 희박해 상당히 귀하게 대접받는다. 1970년 개봉해 화제를 모았던 정인엽 감독의 영화 ‘아- 님아(일명 별난 님아)’의 OST인 이 음반도 꽤나 귀한 앨범이다. 사실 재킷 커버는 영화 OST로 디자인되었지만 온전한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으로 보기는 어렵다. 타이틀곡인 펄시스터즈의 <아 님아!>를 제외한 나머지 곡들은 영화와 전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 속에 <아 님아!>와 함께 등장하는 히트곡 <커피한잔>도 이 앨범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백만인의 가요 앵콜’이란 부제가 붙은 이 앨범의 가치는 선명하다. 우선 신중현의 두 번째 영화음악감독 작품이고 걸그룹 사상 최초로 데뷔 1년 만인 1969년에 펄시스터즈를 MBC 가수왕에 등극시킨 빅 히트곡 <님아>의 영화제작을 기념한 앨범이기 때문이다. 펄시스터즈는 이전까지 대중과의 소통에 실패를 거듭했던 신중현이 자신의 사단을 거느리게 되는 상업적 성공의 출발점이란 점에서 빛난다. 신중현은 펄시스터즈의 뒤를 이어 신중현사단의 대표가수로 떠오른 김추자의 히트곡 <늦기 전에>와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도 이듬해인 1971년에 동명의 영화로 제작하며 상종가를 날렸다.
한국영화와 대중가요는 일제강점기부터 각각의 흥행에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며 공생해오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영화 ‘아- 님아!(일명 별난 님아)’는 인기배우 윤정희와 신성일 그리고 ‘꼬마신랑’으로 유명한 아역 김정훈이 주연을 맡았다. 1970년대의 김정훈은 주로 트로이카 여배우들의 아들로 영화에 등장했는데, 이 영화에서는 윤정희의 동생으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다. 로맨틱 코미디물인 이 영화에서 윤정희와 신성일은 연인으로 등장해 관객들에게 재미를 안겨주며 전국적인 흥행몰이를 했다. 또한 가수왕에 등극해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던 펄시스터즈의 주제가들도 이 영화의 흥행에 불을 붙였다.
앨범의 문을 여는 타이틀곡은 동명의 영화주제가로 펄시스터즈를 MBC 가수왕에 등극시킨 <아 님아>이다. 이 곡은 1968년 발표된 펄시스터즈의 데뷔음반 타이틀곡 <님아>가 원곡으로 <커피한잔>, <떠나아야 할 그 사람>과 더불어 신중현사운드 돌풍을 몰고 왔다. 펄시스터즈의 노래는 총 12곡 중 단 한 곡이다. 앨범의 A면은 신중현사단의 남녀 가수들의 진귀한 노래들로 포진되어 있다. 평범한 인기가수에서 사이키델릭 록커로 파격적으로 변신했던 김상희의 <어떻게 해>, 영화 ‘푸른사과’를 통해 먼저 소개된 트윈폴리오의 <떠나야할 그 사람>, 신중현밴드 덩키스 여성보컬 이정화의 <내일>은 모두 1969년에 발표된 노래들이다. 박인수의 <봄비>는 1970년 신중현밴드 퀘션스 독집을 통해 발표되었고, 퀘션스의 객원보컬 출신인 송만수의 <빗속의 여인>도 같은 해에 발표되었다.
신중현 곡으로 구성된 A면과 달리 B면은 작곡가 김강섭과 김희갑의 창작곡과 번안 곡으로 구성되었다. 급조된 느낌이지만 희귀 버전들이다. 김추자의 <빨간 선인장>은 김강섭 곡으로 김상희의 히트곡을 다시 불렀다. 이 앨범에 처음 수록된 <빨간 선인장>은 1974년까지 김추자의 여러 앨범들에 빈번하게 수록되었다. 킹보이스의 <멀어져간 사람아>는 김희갑 곡으로 60년대 중후반에 발표했던 원곡이 재 수록되었다. 킹보이스의 노래는 쉽게 들을 수 없는 희귀 버전인데 이 곡은 1969년 후기 키보이스가 다시 불러 알려졌다.
<보리밭>으로 70년대를 풍미했던 문정선의 첫 히트곡 <파초의 꿈>과 김도향의 솔로 데뷔곡 중 하나인 <불나비 사랑>은 모두 김강섭의 창작곡이다. <불나비 사랑>은 1965년 개봉한 영화 ‘불나비’의 주제가로 원곡가수는 김상국이다. 조용남의 <딜라일라>는 영국가수 톰 존스의 팝송을 번안한 곡으로 이 앨범이 최초 버전은 아니지만 그의 존재를 대중에게 알린 첫 히트곡이다. B면 6번 트랙 <금잔디>는 트랙 리스트에는 태원, 밑에 가사에는 킹보이스로 가수 이름이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태원은 미8군 가수 출신인 리나박의 동생으로 당시 이 곡의 작곡가 김희갑과 처남 매부 사이였다. <금잔디>를 가장 먼저 취입했던 가수는 킹보이스이고 실제로 앨범에도 오리지널 버전이 수록된 점으로 미뤄 트랙 리스트에 표기된 태원 표기는 실수로 보인다. 그래서 이번 재발매 음반에서는 가수의 이름을 수정했다. 킹보이스의 <금잔디>는 후기 키보이스가 1969년에 리메이크해 널리 알려졌다.
1970년대에 신중현의 창작곡들은 여러 가수들에 의해 발표되자마자 히트되어 동명의 영화로까지 제작되는 일종의 공식을 만들어냈을 정도로 각광받았다. 제작되는 영화들마다 화제를 모으며 흥행까지 기록하면서 그는 영화음악감독으로도 독보적인 위치를 획득했다. 당시 발매된 LP에 ‘신중현 작편곡’ 혹은 ‘신중현 SOUND'란 표기는 흥행보증수표로 통했다. 이 앨범은 특별한 음악적 주제나 콘셉트를 가지고 이뤄진 선곡이 아닌지라 수록곡들이 음악적인 통일성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당시 공연과 방송무대에서 비주얼 시대를 열어 제친 펄시스터즈 음악여정의 정점을 증언하고 기념하는 앨범이란 점에서 가치가 무궁하다. 또한 록의 대부 신중현도 엄혹했던 무명시절을 완벽하게 벗어나 거침없는 내달리는 질주를 했던 전성기에 발매된 음반이라는 점에서도 가치가 높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