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STAGE. 농익은 사이다 펑크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의 프렌차이징 스타. 청량한 사운드와 밝고 에너지 넘치는 라이브 무대로 15년 넘는 세월 동안 마니아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아온 관록의 펑크밴드. '슈가도넛'이 새 앨범으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음악적 역량이나 성취, 꾸준한 작품 발표와 라이브 활동에 비해서는 아직 대중적으로 더 알려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의아한(이라고 말하려는 순간 [불후의 명곡]이 아니라 [무한도전]에 나갔어야만 했다는 생각이 언뜻 스치긴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열정적이면서도 충분히 농익은 밴드만이 들려줄 수 있는 묵직한 소리의 달콤한 향연을 선사한다.
사실 홍대가 인디의 성지로 자리매김한 시절 그곳은 애초에 펑크로 불타오르기 시작했었다. 수많았던 라이브 클럽에서 연주되던 거칠지만 날 것 그대로의 멋이 있었던 펑크의 바람 속에서 '크라잉 넛'과 '노브레인'이라는 불세출의 밴드가 탄생했고, 이 양대 밴드가 워낙 탄탄하게 펑크의 지분을 선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후발주자들이 자신의 영역을 확보해 나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슈가도넛'은 홍대의 클럽 문화가 이미 분화되기 시작한 2001년에 결성되어 라이브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이들의 무기는 이전의 펑크 밴드들과는 다른 무엇이었다. 거칠기보다는 밝고, 날 것 그대로 보다는 진지한, 분노를 뿜어내기보다는 즐거운 펑크. 분명 펑크를 바탕으로 하지만 눈과 귀가 이전에 없었던 신선한 느낌으로 즐거워지는 그것은 바로 '슈가도넛'의 전매특허, 사이다와 같은 사운드의 청량함이었다.
'크라잉 넛'이나 '노브레인'은 아니지만, '델리스파이스'나 '마이 앤트 메리'도 아닌 무엇. '슈가도넛'은 2002년 첫 앨범 발매에 이어 1.5집, 2집, 3집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펑크를 바탕으로 다양한 변주를 시도한다. 때론 섬세한 감성으로, 때론 펑키한 리듬으로, 또 때로는 화려한 신스팝 사운드로 스펙트럼을 넓혀 가면서 모던 펑크라는 자신들만의 독보적인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아마도 이러한 노력은 음악 자체, 사운드 자체에 대한 열정적인 실험이었던 동시에 밴드로서 더 많은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고민의 흔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슈가도넛은 음악의 장르적 실험뿐만 아니라 밴드의 활동 영역도 굉장히 다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각종 페스티벌 무대를 섭렵함과 동시에 영화와 드라마 OST는 물론, 아이스크림 CF 배경음악과 레이싱 게임 OST 등 실로 다양하게 대중들과의 접점을 넓혀나갔다. 하지만 밴드를 지속한다는 것은 역시 녹록지만은 않은 일. 슈가도넛은 팬들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지난 2011년 해체했다가 2014년에 재결합한 이후, EP와 정규 4집에 이어 올해 5집 앨범까지 다시금 왕성한 창작 활동에 불을 지피고 있는 중이다.
이번 온스테이지는 그간 펑크를 바탕으로 다양한 변주를 시도해온 '슈가도넛'의 음악적 역량과 수백 아니 수천 회에 달하는 무대를 통해 갈고닦아온 탄탄한 라이브 연주를 즐길 수 있는 기회다. "Imagine, Close Your Eyes"는 그야말로 쨍쨍한 신스 사운드와 보컬 창스의 목소리를 기분 좋게 귀에 내리꽂으며 '슈가도넛'의 밴드로서의 미덕과 현재 위치를 확실히 각인시켜준다. "Fish"는 부침을 겪고 다시 태어난 관록의 밴드가 음악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더욱 성장했음을 격정적인 몸짓과 꽉 찬 사운드로 웅변하듯 들려준다. "몇해지나"는 뭐랄까. 데뷔 16년 차 밴드의 지나온 시절에 대한 수줍은 자기 고백이자 미래에 대한 굳은 의지의 표현처럼 느껴지는 건 아마도 기분 탓이겠지. 세 곡을 감상하는 동안 펑크밴드 티셔츠만 입고 다니던 갓 스물 록키드로 순간 돌아갔다 온 것처럼 세월의 무상함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는 통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기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