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nd 위버멘쉬(Ubermensch)의 Self-Titled EP [위버멘쉬]
‘위버멘쉬’가 무슨 뜻인지 가끔 질문 받는다. 그럴 때마다 별 의미 없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한다. 니체의 위버멘쉬 사상에서 빌려온 이름이다.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면 초인쯤 되지만, 완벽한 번역이랄 수 없어 학계에서는 원어를 살려 위버멘쉬라고 쓴다… 블라블라… 누구도 귀담아듣지 않고, 나도 그쯤 말하다 만다.
어려서부터 꽤 냉소적인 성격이었지만, 그래도 사춘기 시절엔 제법 경도되어 있던 것들이 있다. 록(Rock)이 나를 매료시켰고 철학, 예술의 각 분야마다 영웅이 한둘쯤은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니체에 경도되어 있었다. 그의 책 대부분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간혹 눈에 띄는 시크하고 쿨한 선언들은 어린 마음을 사로잡았었다. 위버멘쉬라는 말도 그랬다. ‘초인’이라고 번역되어 있던 오래된 책을 읽으며 난 어렴풋이 미래를 예감했다. 교복을 걸치고 원치 않는 삶을 강요받으며 꾸역꾸역 살아내는 지금은 낙타에 지나지 않지만, 이 굴레에 과감히 도전하여 스스로 거듭나기 위한 싸움을 하는 사자가 될 것이며, 나아가 새로이 탄생하는 아이가 되겠다는 거창하지만 실은 흔한 ‘중2병’스러운 선언을 마음속에 새겼던 것이다. - 위버멘쉬 싱글 [외골수] 소개글 中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도 이 단어를 기억하고 있었다. 1 년 정도 고민 끝에 다니던 첫 직장을 그만두고 밴드를 결성했고, 밴드 이름은 위버멘쉬가 되었다. 재작년에 결혼할 때는 신혼여행에 가서 팔에 위버멘쉬를 문신했다. 새로운 삶의 국면마다 주문처럼 위버멘쉬를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이 단어는 내게 일종의 신조다.
두 장의 EP와 세 장의 싱글을 내고 7년여의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 삶이 멈추지 않듯 위버멘쉬로서의 경주도 끝나지 않았다. 내게 있어 위버멘쉬는 거창하면서도 한 편 소박한 단어이기도 하다. 자신이라는 틀을 끊임없이 극복한다는 건 인간으로서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극복이라는 게 그렇게 거창하기만 한 건 아니다. 평소에 의식은 하지만 안일하게 지나쳐버리는 작은 결심들을 하나라도 실행해 보는 것. 그리고 어떤 결심도 단념하지 않는 것. 남의 이야기를 경청할 것. 경청은 하되 휘둘리지 말 것. 그 이야기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과 세상을 끊임없이 탐구할 것. 이것이 내가 위버멘쉬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사는 방식이다. 앨범 [위버멘쉬] 역시 나를 포함한 우리 멤버들의 끝이자 시작의 표식으로 남을 것이다.
우리 음악은 나를 포함한 멤버들의 청춘 한 부분을 그려내고 있다. 어설프고 모자란 구석이 많지만, 그 역시 우리의 모습이었다. 깐에는 치열하게 완성한 앨범이 누군가에게 위로와 즐거움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이 앨범이 있기까지 노력한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글. 신동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