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장(場)과 면(面)을 음악으로 더듬어 그려낸, [윤희에게 Original Soundtrack]
[윤희에게]는 우연히 한 통의 편지를 받은 ‘윤희’(김희애)가 잊고 지냈던 첫사랑의 기억을 찾아 설원이 펼쳐진 곳으로 떠나는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첫사랑에 대한 아릿한 그리움, 잃어버린 과거를 회상하는 쓸쓸함, 그리고 자신을 찾아가는 중년 여성의 미세한 감정 변화를 담담하게 짚은 영화에서, 순간순간의 감정을 끌어올리고 부풀리는 것은 음악이다.
앞서 [소셜포비아], [셔틀콕], [피의 연대기] 등 작품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작곡했던 뮤지션 김해원이 [윤희에게] 음악감독을 맡아 특유의 섬세한 터치로 영화 전반을 살뜰히 감싼다. 김해원은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지만, 영화가 아닌 음악으로 진로를 정했다. 그리고 단편영화에 삽입할 음악을 만들면서 뮤지션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런 그가 영상을 보고, 시나리오를 읽고, 심상과 장면들을 음악으로 더듬어 그려낸 하나하나의 스코어는, 영화 전면에 드러나 존재감을 뽐내기보단 한발 비껴난 곳에 자리를 잡고 관객이 감정의 여백을 채워가도록 돕는다.
영화의 흐름대로 나열되어 전반적으로 차분한 분위기가 감도는 이 앨범은, 단번에 귀에 박히는 자극적인 구석은 없지만,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들의 내밀한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예컨대 설원이 가득 펼쳐진 낯선 곳으로 여행을 이끌었다가(‘겨울의 오타루’), 통통 튀어 오르는 두 고등학생의 풋풋한 에너지를 그렸다가(‘새봄과 경수’), 세월을 머금은 카페의 정취를 은근히 돋우는 포크를 띄우는 등(‘Excuse Me, Ms.’) 다양한 상황 속에 우릴 들여놓는 것도 오롯이 음악의 몫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거의 매 트랙에서 명징하게 울려 퍼지는 피아노 선율이다. 단단하고 묵직한 질감으로 트랙의 뼈대를 세우며 스코어에 숨결을 불어넣는 피아노 연주는 싱어송라이터 임주연의 손길을 거쳐 보다 정밀하고 탄탄한 만듦새를 갖췄다. 유재하가요제 수상 경력의 임주연은 피아노 기반의 작•편곡 능력과 연주 능력이 탁월한 음악가로, 이번 앨범에 김해원과 함께 공동 작곡, 편곡으로 참여하며 많은 부분을 꼼꼼히 살피고 어루만졌다.
영화를 감상한 뒤 앨범을 플레이하면, 눈앞에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설원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피아노를 중심에 두고, 기타, 첼로 같은 다양한 악기로 쌓아 올린 선율은 마치 햇살에 반짝이는 눈처럼 찰랑거린다. 그렇게 앨범 속 생생히 스치는 풍경과 소리들은, 서두르지 않고 청자에게 다가가, 천천히 스며든 후 한가득 잔향처럼 퍼져 오래도록 마음을 간지럽힌다.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 사랑을 위해 용기를 내고 있나요?” 영화를 보고 나면 우리는 마침내 이 질문에 다다르게 된다. 그리고 남겨진 사운드트랙을 통해 우리는,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에 대한 답을 어렴풋이 더듬어볼 수 있을 것이다.
글: 최은제 (자유기고가)
크레딧
음악 감독 | 김해원
작곡/편곡 | 김해원, 임주연
프로그래밍 | 김해원
녹음 | 김해원, 박동주 (SBA 미디어센터)
믹싱 | 김해원
마스터링 | 이재수 (Sonority Mastering)
피아노 | 임주연
기타 | 김해원
바이올린 | 김신혜, 주소영
비올라 | 박용은
첼로 | 지박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