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역사가 나의 역사다, 여성 록 음악가 목소리를 모아내다
2020년 올해 코로나19 팬더믹과 더불어 공연예술계 정체, 사회 이면에 나타난 젠더 문제는 우리의 안정과 안위를 위협합니다. N번방 사건은 많은 여성들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대응은 여전히 약하고 더딥니다. 차별 방지법은 아직 법안 발안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권력이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상상한 권력은 수직적 남성적 문화의 ‘권세나 위세’가 아닌 ‘권하다’, ’권장하다’, ‘가르치다’, ‘힘쓰다’의 勸(권할 권)으로 새롭게 정의하는 권력(勸力: 권유하는 힘)이길 바랍니다.
록은 태생부터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때 관객을 하나로 만들고,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등 저항의 음악이라는 고전적인 슬로건은 비켜놓더라도, 현재 록 음악의 위치는 아티스트의 에고를 표현하는 작가주의 성향이 가장 짙은 대중음악이죠. 사운드적으로는 시대의 발전에 따라 전자음악이 그 강함을 가져갔지만, 록은 언제나 사람 그 자체가 음악에 담기기를 열망하고 ‘진정성'을 훌륭함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 음악가들의 자전적 스토리텔링을 담은 음악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한국 그리고 인디 씬에서 록 여성 아티스트는 창작의 힘에 비해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디 씬에서도 미소지니는 여전히 억압의 기제로 작용하고 있어요.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창작하고 있는 동료 여성 록 음악가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습니다. 외롭지 않기를,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노래하기를, 그들의 좋은 음악이 멈추지 않기를, 많은 이들에게 오래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였습니다. (WeWeWe 기획단)
이것이 우리의 역사다 - 여성록 컴필레이션, [We, Do It Together]
오래 전 얘기지만, 록 음악을 클럽 공연으로 처음 접한 어린 나는 무대를 보며 늘 어딘가 묘한 이질감을 느끼곤 했다. 그 이질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알게 된 건 비교적 최근 일이다. 무대 위에는 늘 여러 명의 인물이 있었지만 대부분 남성이었다. 간혹 등장하는 여성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키보드를 치거나 정식 멤버가 아닌 객원 멤버로 무대에 오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간혹 기타나 드럼을 치거나 노래를 부르는 여성도 있었지만, 이들이 실력과 상관없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건 매우 드문 경우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반 농담처럼 던지던 ‘록은 남성의 음악’이라는 표현이 1950년대에서 2000년대로, 미국에서 한반도로 시대와 대륙을 초월해 형형한 빛을 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여성 음악가들의 연대활동을 기획하고 있는 WeWeWe 기획단이 야심 차게 준비한 국내 최초 여성록 컴필레이션 [We, Do It Together]는 어쩌면 그렇게 꼬꼬마였던 내가 어릴 적 품었던, 당시에는 이해조차 하지 못했던 근원적인 의문을 음악으로 깨부수는 작업인지도 모른다. 이들은 2018년에는 기획자 조한나씨와 함께 여성/퀴어 음악가를 위한 공연시리즈 [Circles]를, 2019년에는 주체적으로 창작하고 활동하는 여성 음악가들을 위한 [WeWeWe Networking Party]를 열었다. [We, Do It Together]는 이렇게 차근차근 쌓아 올려온 이들의 시간과 연대가 낳은 한 장의 앨범이다. 음악과 나 사이를 채우는 수많은 동료들 속에서, 그들이 우호적이거나 비우호적인 것과 상관없이 어딘가 늘 이방인 같은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여성 음악가들이 용기와 소리를 내어 한자리에 모였다.
앨범에 참여한 이들의 면면은 무척 다양하다. 성별, 국적, 그룹 구성 형태는 물론 장르나 데뷔 연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열두 팀이 손을 잡았다. 그렇게 개성 넘치는 이들을 한데 모아 생기는 독특한 파장이 이 앨범을 좀처럼 예사롭지 않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다. 자신을 노래하자는 것 외에 큰 가이드가 없었던 이들의 음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같은 나무에서 자라난 과일처럼 흡사한 모양으로 흡사한 향기를 풍긴다. 다 죽이고 죽고 싶지만 실은 누구보다 살고 싶고 웃고 싶은 마음을 솔직하게 토해내는 이(애리 - 나는 깜빡)와 다 지나간다고, 잘했다고, 수고 많았다고, 괜찮다고 위로를 건네는 이(아마도이자람밴드 - Good Night)의 모습이 닮았다. 타인의 부적절한 시선과 뜬 소문에 고통 받는 소녀의 절규와(카코포니 - 소녀) 음주로 의한 심신미약이나 앞길이 창창하다는 말로 납득하기 어려운 면죄부를 남발하는 말뿐인 법의 심판을 직설적으로 비난하는 목소리가(에고펑션에러 - 판) 닮았다. 모양은 다르지만, 결국 모두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이야기다.
앨범에 참여한 이들의 마음이 마냥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남들처럼 내 음악을 하고 있을 뿐인데 여성이라는 프레임을 굳이 하나 더하는 것이 불편했을 수도 있고, 창작자로서 의식적으로 자신 안에 꽁꽁 묶어둔 여성을 정면으로 마주해 꺼내어 놓기가 쉽지 않았을 거라고도 짐작한다. 이건 비단 이 앨범에 참여한 여성 록음악가들에게만 해당하는 감정은 아니다. 이 글을 쓰는 나도, 내 몫의 하루를 살아가며 매번 내 안의 모순과 세상이 가진 한계에 부딪힌다. 바닥에 맥없이 주저앉으려는 몸과 마음에 앨범에 담긴 열두 곡의 서로 다른 노래를 뿌린다. 다시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여성은 같은 마음, 같은 뿌리를 가지고 매일같이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그 사이로 작은 안도의 바람이 스며든다. 모일수록 커지는 목소리를, 너의 역사가 나의 역사임을 재확인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이제 시작되었다. 이것이 우리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역사다. (김윤하 / 대중음악평론가)
Artists
다브다 |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 빌리카터 | 아디오스오디오 | 아마도이자람밴드 | 애리 | 에고펑션에러 | 천미지 | 카코포니 | 티어파크 | 향니 | 황보령
Mastered by Seunghee Kang @Sonic Korea
Design by Studio Gomin
Executive Produced by WeWeWe 기획단
*이 음반은 마포구 예술활동 거점지역 활성화사업 추진위원회 [예술로 ‘업業’ CYCLE]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