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미의 두 장의 한정판 바이닐(LP)을 들여다보고 만져본다.
1992년 정규 1집으로 데뷔했지만, 그 전부터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며 이름을 알린 이은미의 음악 생활은 어느새 30년을 넘겼다.
강산이 세 번은 바뀌었을 시간 동안 이은미는 한결같이 노래의 길을 걸었다. 6장의 정규 음반과 5장의 EP를 발표하고, 꾸준히 공연을
펼치는 동안 이은미는 명실상부한 한국의 대표 여성보컬리스트가 되었다. 가끔은 지칠만도 하고 지겨울 법도 한데 이은미는 쉬지 않는다.
멈추지 않는다. 두 장의 바이닐은 바로 이은미의 끝없는 정진과 전진의 기록이다.
그 중 본 앨범 <Portrait>는 1992년의 1집부터 2017년에 발표한 디지털 싱글 <알바트로스>까지 이은미가 내놓은 수많은 노래 가운데 열 곡의 노래를 엄선했다.
2002년의 음원부터 2017년까지의 음원을 모으고 다듬은 노래들은 A면과 B면 각각 23분여 동안의 감동으로 초대한다.
첫 곡 <바람기억>을 들을 때부터 절감하는 것은 이은미의 음악이 늘 충만하다는 사실이다.
이은미의 노래는 노래 속의 주인공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이야기 속 감정에 완전히 일치되어 있다. 한 사람의 보컬리스트가 노래를 부르는 일은 노래 속의 이야기를 재현하는 일이다.
자신의 이야기이건,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건 창작자의 차이가 감동의 차이를 만들지 않는다.
누구의 이야기이건 자신의 이야기처럼 흡수하고 발화하는 것, 최소한 그렇게 보이고 들리게 만드는 일이 예술가의 숙명이라는 것을 아는 이은미는 항상 노래 속으로 완전히 침투해 자신의 인생처럼 노래를 산다.
그래서 이은미가 부른 노래를 듣다보면 이 노래가 다른 뮤지션의 리메이크 곡인지 아닌지 분별하는 일이 무의미해진다.
많은 이들은 이은미를 맨발과 열창으로 기억할 것이다.
이은미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맨발과 열창은 사실 노래 속 이야기, 그 사연과 감정에 하나 되려는 간절한 기원이다.
“우리의 만남 우리의 이별 / 그 바래진 기억”이나 “죽을 만큼 미워했던 맘”과 “못된 욕심”을 노래할 때, 이은미는 이 사랑과 이별의 노랫말이 누군가에게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임을 안다.
다만 묻어두었을 뿐, 지울 수 없고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이미 많은 이들이 노래했고 또 노래하겠지만 부를 때마다 사무치고 들을 때마다 사무친다는 것을 안다. 나이가 다르고 사는 지역이 다르고 살아온 날들이 다르다 해도 사랑하고 헤어지는 일, 그리고 그리워하는 일은 한 사람의 삶을 쥐고 흔들며 물들인다.
우리는 그렇게 마음이 떨리고, 가슴이 뛰면서 비로소 사는 것처럼 살아간다. 삶은 만남과 헤어짐으로 알록달록 물들여진 보자기이다.
우리는 각자의 섬에 보자기를 깃발처럼 나부끼다 내려 접고 다시 걸어 올리며 한 번뿐인 삶을 산다.
그러니 이은미의 노래가 간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열창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은미의 열창은 악기를 쏟아 붓고 목소리의 기교를 총동원하는 열창이 아니다.
이 음반에 담아낸 열 곡의 노래는 이은미의 열창이 노래를 넘어서는 열창이 아니라, 노래만큼 부르고 노래처럼 사는 일의 끝없는 반복임을 확인시킨다.
이은미는 그렇게 노래함으로써 노래의 본질에 닿고, 모르는 수많은 이들의 한숨과 눈물을 대신한다.
이은미가 한국을 대표하는 보컬리스트로 수많은 팬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그 끝없는 반복으로 모두의 진심 어린 순간을 대변하며 보듬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새 추억은 희미해졌지만 이은미의 노래 덕분에 견딜 수 있었고 살아갈 수 있었다.
이 음반으로 다시 만나는 날들. 그리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곁에 있는 노래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