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지연' [은밀한 이야기]
가수든 시인이든 소설가든 그들은 어떤 미학적 궁극을 추구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이 진실한 존재라면 말이다. 이를 테면 노래에게 궁극이 있다면 거기에 닿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건 일차적으로 가수의 몫이겠지만 그것은 가수가 아닌 다른 자격으로서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럴 때 노래의 궁극이 선명하게 열릴 가능성이 크다. 가수는 개인택시운전사나 회계사처럼 신분적인 존재가 아니다. 가수는, 행위적 존재로서 노래를 부를 때만 가수다. 노래를 부르고 있지 않을 때 가수는 가수가 아니어서 제법 다양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손지연은 가수로서만 노래에 닿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다. 손지연은 곧잘 연애의 실패자로서, 불량한 방랑자로서, 시를 흠모하는 독자로서, 모순 가득한 나르시시스트로서 노래에 닿고자 한다. 황량한 무정부주의자로서, 권태로운 관찰자로서, 사회로부터 위협받는 여자로서, 고독하고 퇴폐적인 단독자로서 노래에 닿고자 한다. 이처럼 다양하게 노래에 닿고자 하는 여러 존재들을 아우르는 마음이 손지연이 싱어송라이터로서 많은 이들에게 감응을 일으키는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노래에, 음계에, 그 시스템에 갇혀 있길 거부하는 자유롭고 세속적인 처세가 오히려 숭고함을 부여하는 이 모순적인 현상을 뭐라고 해야 할까. 손지연의 노래는, 가장 성스러운 방탕의 양식이 바로 음악임을, 그리고 그것을 행위로서 실천하는 이가 뮤지션임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손지연은 내가 알고 있는 이 땅에서 가장 문학적인 뮤지션이자 아티스트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내가 하나만 알려주겠다. 이번 싱글 앨범 수록곡 [은밀한 이야기]도 그렇거니와 그녀가 쓰는 모든 곡은 시의 내재적 원리를 제대로 이해한 자만이 쓸 수 있는 시의 이전(以前)을 보여준다.
이제 이번에 싱글로 발표되는 신곡 [은밀한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한다. 나는 음악평론가도 아니고 대중음악에 깊은 지식이 있는 사람도 아니어서 크리틱한 피드백을 할 수는 없지만 [은밀한 이야기]를 거듭해서 듣는 동안, 이것이 끝없이 반복 확장되는 우리 시대의 ‘환상곡’이 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서 왜 난 난데없이 환상이라는 단어를 손지연의 곡을 설명하는 데 끌어 왔을까. 사실 난 오래 전부터 손지연의 음악을 들으면서 ‘환상’이라는 개념을 빼고는 그녀의 곡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해왔다. 환상이란 현실을 왜곡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고통스러운 현실에 맞서는 안간힘 같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쇼팽이 자신의 운명적인 비극을 피아노로 구현하면서 19세기의 내성적인 폴로네이즈를 완성했듯이 손지연은 지금 우리 시대의 환상곡을 즉흥적으로 완성하고 있다고나 할까. “젖은 담장 밑에 핀 꽃을 꺾어서/머리에 꽂고 환하게 웃으며/수도 없이 예쁘냐 물어봐도 말없이/고개만 끄덕였지 말문이 막혀버렸지” 같은 노랫말은 다분히 신파적이고 19세기적 낭만에 닿아 있는 사랑의 감정적 소여를 노래하지만, 손지연은 여기서 자신의 마음을 응시하는 걸 멈추지 않고 끝없이 새로운 서사를 이어나간다. 그녀는 이 서사를 진행시켜 “돌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어/사랑은 시간을 잊게 만들어/온종일 생각해봐 점점 멀어지던 널/바다에게 털어놓고 물어봐도 모른다” 같은 반전의 심사로 연결시키는데, 이 다채로운 에피소드가 5분 50초 동안 이어지는 발라드에 풍성한 환상곡이나 심포니 같은 부감을 부여한다. 가수가 동어반복이나 자기 표절이 아닌, 끝없이 노래의 서사를 창작해 나간다는 건, 사실 지극히 문학적인 것이다. (나는 대중음악이 상투적으로 보여주는 되새김 같은 구성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새로운 이야길 이어가지 않으면 다음 날 죽임을 당하는 천일야화의 공주 세헤라자데처럼 손지연은 [은밀한 이야기]를 끝도 없이 해나간다. 그것은 문학적인 모험을 노래 속에 들일 수 있는 싱어 송 라이터 손지연의 타고난 재능에서 기인한다. 곡조와 음계는 보기 좋게 너울지고 보컬의 운용은 자유자재 막힘이 없다. 위태로운가 하면 다시 평정을 찾고 끝없는 이야기를 향해 곡진하게 나아간다. ‘발라드’라는 형식 속에 환상과 자유를 담아 이토록 절묘하게 노래의 궁극을 실현하는 우리 시대의 노래를 나는 당분간 다시 만나지는 못할 것이다. 손지연은 지금 환상을 주조하는, 노래하는 샤먼이다.
(소설가 김도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