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비' 싱글앨범 [낭만파 극작가 신선비 1st single 발표
나는 인디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인디가 뭘까. 안 팔리는 거? 남이야 뭐래건 꼴리는 대로 하는 거? 사전적으로는 아마도 '독립적(independent)'이라는 의미일 텐데, 은근슬쩍 내 술자리에 끼었다가 돈 안내고 도망가는 인디들은 왜 그리 많았던 것일까. 종종 인디는 '안 착한' 해물탕집이면 어김없이 쓰고 있다는 마법의 양념처럼 느껴진다. 세계각지에서 수입한 냉동재료를 넣고 대충 끓여도 '인디'라는 말만 들어가면 대중들이야 알게 뭐냐, 심지어 다국적기업의 햄버거를 먹듯 해롭지만 중독성 있는 맛에 길들여지고 만다. 그렇다고 내가 대중음악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걸그룹은 스포츠중계나 컴퓨터게임과 동급이다. 한마디로 전혀 관심 없다.
최근의 발라드는 나에게 수백 개의 제목을 가진 하나의 곡으로 들리며, 힙합은 하나의 곡을 변형시킨 수백 수천 개의 노래로 들린다. 재즈와 클래식을 제외한 한국에서 생산된 음원을 사지 않은지는 매우 오래되었다. 그렇다. 나는 이제 꼰대인 것이다. '요즘 애들은 다 똑같이 생겼다'라고 말하는 답답한 아저씨가 된 것이다. 답답한 아저씨는 대중음악이라는 말도, 인디라는 말도 인정하지 않는다. 훌륭한 음악과 허접한 음악이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한때는 대중음악 중에도 훌륭한 음악이 많이 있었다. 뛰어난 '오브리'는 있어도, 허접한 '인디'를 찾기란 힘들었다. 하지만 작금의 대한민국 인디는 두 가지 뿐인 것 같다. '슈스케'를 통과한 인디와 그렇지 못한 인디, 어쩌다가 인디는 대중 음악가들에게 '오브리'를 하게 되었을까? 이런 맥락 속에서 낭만파 극작가 신선비의 "그들이 사랑하기까지"를 듣는다. 나는 작곡가 신선비씨의 이번 작업이 작금의 상황을 타개할만한 혁신적인 음악이라고 감히 말할 만큼 뻔뻔스러운 사람이 아니므로 우선 그의 음악이 나의 꼰대스러운 귀에는 그닥 인디로 들리지 않았다는 말부터 해야겠다.
인디가 응당 가져야 한다고 생각되는 음악권력에 대한 저항이나 새로운 형식의 추구라는 측면이 도드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점 때문에 "그들이 사랑하기까지"는 최근의 일부 구태의연한 인디와는 근본이 다르다. 외국의 구태의연한 음악장르들을 뒤섞어 마치 '신선한' 음식인양 내놓는 해물잡탕의 음악으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다. 사용한 재료 그대로 평가받겠다는 시대착오적인 착함과, 쪽팔리게 ‘인디’의 포장지 따위로 있어 보이고 싶지는 않다는 어리석은 곤조가 이 곡의 매력이자 신선함이랄까. 이 노래는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사랑의 대화 속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는 셈이다. 인디면 어떻고 인디가 아니면 또 어때. 남들이야 훌륭하다고 하건 허접하다고 하건, 나는 내 음악을 하고 있다고! 물론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적어도 오브리는 아니니까. - 노희준(소설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