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STAGE. '이그니토'의 세계
사람들은 그를 악마라 부르곤 했다. 물론 음악 안의 이야기이다. 강렬한 붉은색 재킷이 눈에 먼저 들어오는 그의 첫 앨범 [Demolish]에서 지금껏 듣지 못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첫 앨범의 보도자료 제목은 장엄한 묵시록적 대서사시였다. '이그니토'가 그려내는 세계에는 장엄과 묵시록과 대서사시가 담겨있었다. [Demolish]는 온통 압도적이었다. 압도적인 목소리가 있었고 압도적인 프로덕션이 있었고 압도적인 세계관이 있었다. 11년 전 그렇게 압도적으로 등장했던 '이그니토'가 드디어(이제야) 온스테이지 카메라 앞에 섰다.
올해 5월 '이그니토'는 정말 오랜만에 두 번째 앨범 [Gaia]를 발표했다. 11년 만의 정규 앨범이었다. 비정규 앨범이었던 [Black](2011) 이후로도 6년 만이니 누구 못지않은 과작 아티스트인 셈이다. 그 기간 동안 음악을 내려놓은 적은 없었다. 자신의 음악이 대중적으로 통용되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그래서 슬럼프에 빠진 적도 있지만 계속해서 음악을 생각했고 새 앨범을 준비했다.
특히 가사를 쓰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정신적으로 힘들 만큼 가사를 쓸 때면 진지한 마음가짐이 필요했고 '이그니토'만의 세계관을 갖추는데 많은 시간이 들었다. '이그니토'의 가사에는 수많은 이미지가 있다. 그 수많은 이미지가 모여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누군가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화자가 말하려는 메시지를 굳이 모두 이해할 필요는 없다. 함축적 의미에서 퍼져 나오는 이미지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래서 '이그니토'는 충분히 좋은 리리시스트이고, [Demolish]와 [Gaia]는 그 이미지로 이루어낸 가상의 세계이다.
그래서 "MARIA"의 온스테이지 영상은 '이그니토'란 아티스트를 알리는데 가장 적절한 수단일 수 있을 것이다. 화려하진 않은 조명 사이에서 '이그니토'는 홀로 서 랩을 한다. 오직 그것뿐이다. 여기에 그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이야기를 들으며 각자의 상상을 만들어내면 된다. 그가 입고 있는 티셔츠마저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야기 안에 담겨 있는 라임의 배치, 그 라임을 뱉어내는 발성과 발음은 '이그니토'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진 얼마나 멋진 래퍼인지를 드러내 보인다. 독보적인 목소리에 그의 랩 스킬은 상대적으로 가려져왔다.
두 명의 보컬리스트가 참여한 "FLOWER (Feat. SIENE)"와 "METAL RISING (Feat. DOKYO13 from 13STEPS)"은 '이그니토'의 상반된 모습이다. 곡이 담고 있는 분위기가 그렇고 특히 보컬리스트의 코러스는 극단적일 만큼 다른 느낌을 준다. 펑크 밴드 '스트라이커스'에서 활동했던 '신(SIENE)'과 한국 하드코어 대표 밴드인 '13 스텝스'의 보컬인 '김동경(DOKYO13)'은 각 노래가 서로 다른 느낌을 연출해내는데 큰 역할을 한다. 일반적인 알앤비 싱어 대신 록 밴드의 보컬리스트를 기용할 수 있는 건 '이그니토'의 스타일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11년 동안 그가 만든 음악을 들어보자. 앨범 단위로 듣기를 권한다. 그 장엄한 서사의 세계를 경험하기에 4분짜리 곡과 비디오 클립은 아무래도 부족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