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브다 정규 1집
[But, All The Shining Things Are]
“모든 것들이 빛나는 건 아니라네
하지만 더없이 빛나는 것들은 존재하지.”
위의 문장은 철학자 휴버트 드레이퍼스와 숀 켈리의 책 [모든 것은 빛난다] 말미에 실린 에필로그의 한 구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2013년 당시 문학동네에서 제작한 팟캐스트 [문학이야기] 1회에서 평론가 신형철 님이 직접 읽어주신 직역된 버전의 문장을 더 좋아하는 편입니다.
“다만 / 모든 / 빛나는 것은 / 있다.”라고 또박또박 마음에 새겨진 그 글귀는 훗날 저희의 첫 정규 앨범의 제목이 되었네요.
다브다의 정규 1집 [But, All The Shining Things Are]는 도무지 허무와 무기력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한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과 그 시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삶의 무게로 인해 의미를 찾기보단 찾아가는 과정에 있을 불안과 공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로 쉽게 허무주의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하나의 방편으로 진정한 삶의 의미를 희석한 채 살아가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죠. 이는 끝나지 않는 공허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듯하지만, 반대로 실체 없는 고통의 최전선에서 가장 치열하게 싸우며 삶의 이유를 끈질기게 물었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But, All The Shining Things Are]는 이러한 시선들의 단편적 이미지 조각을 모아 찬란하게 부서지는 과정을 그리며 “빛은 지금 여기,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01. Light comes back
앨범의 첫 트랙으로 실리게 될 인트로 ‘Light comes back’은 다소 느슨한 템포로 시작되는 건반과 기타의 아득한 선율 위에서 리버스(reverse) 된 보컬 소스가 제3의 언어로 노래한다. ‘(순서, 방향을)거꾸로 하다’, ‘뒤집다’라는 뜻의 ‘리버스(reverse)’ 사운드는 곡 안에서 그 단어의 뜻으로부터 지워진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 이미 현실이 되어버린 어떤 사태-사건에 대하여 무효화시키고자 하는 심리에 결부되어 시간적 초월성을 부여한다. 따라서 청자는 노래에 담긴 정서를 더듬으며 반중력(反重力) 상태에서 시간을 다층적으로 느낄 수 있다.
02. 여름놀이
뒤이어 인트로의 끝을 쫓아 맹렬히 추격하는 두 번째 트랙 ‘여름놀이’는 다브다가 무대 위에서 보여주었던 특유의 아름답게 폭발하는 에너지를 단번에 이미지화시킨다. 다브다는 반짝이는 기타 리프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도 음악의 구조적 변화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해 곡의 후반부까지 끊임없이 우회하며 도달하기를 즐기는데 이들의 강박 증세는 이 곡에서 서서히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잘게 쪼개져 도무지 틈을 내어주지 않는 무수한 드럼 노트 사이로 나머지 악기들은 기어코 제 자리를 찾아 들어가 촘촘한 구조를 이루며 유쾌하게 어우러지고 끝까지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03. Journey
앨범의 전반적인 가사 내용이 무위의 축제와 찬미의 태도를 취한다면 세 번째 트랙 ‘Journey’는 유일하게 다가올 미래에 정면으로 맞선다.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이 존재하고 있는 삶과 이에 대처하는 자세에 필요한 올바른 시선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총 10곡의 트랙 중 가장 경쾌하고 직선적인 편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04. 혼자놀기
타이틀곡인 ‘혼자놀기’는 미스커뮤니케이션(miscommunication)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설령 사랑하는 사이일지라도 서로가 완벽하게 이해될 수 없음을 알고 있고, 인간이 생존을 위해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할 ‘언어’라는 도구와 소통 능력의 근본 결함으로 인해 필연적인 고통을 수반한다. 궁극적으로 상대방에게 가닿기를 원하는 ‘욕망’ 그 자체만이 남은 세계를 그린 ‘혼자놀기’는 그럼에도 비극적으로 연주되지 않는다. 다만 무엇인가 결여되어 있음을 짐작하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군상을 유희적으로 그려낸다.
05. 꿈의 표정
‘꿈의 표정’은 우리가 한 번쯤은 겪게 되는, 시절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쓰여졌다. 영원할 것만 같던 공동체가 시간이 흘러 자연스레 흩어지며 공유의 영역에서 멀어질 때, 언젠가 다시 서로의 곁을 지켜주리라는 먼 기약과 바램의 메세지를 담았다. 다브다만의 맑고 청량한 느낌이 잘 담긴 곡이다.
06. 흔들흔들
어린 날의 설레임을 그리워하며 흘러가는 청춘의 한 길목에서 불안하게 빛나는 모습을 노래하였다. 다브다에게 청춘이란 늘 한없이 부수어 나가거나 부서짐으로써 존재한다. 부순다는 뜻은 새가 알을 깨고 나가듯 긍정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지만 자칫 덧없음과 상실의 아픔으로만 수렴되기 쉽기 때문에 음악에 있어 불필요하게 과도한 슬픔에 매몰되지 않으려 경계한다. 다브다의 첫 번째 EP [저마다 섬]에 수록된 곡 ‘청춘’의 뒤를 잇는 곡이다.
07. 별아
’별아’는 다음 트랙인 ’검은 밤을 가르던’의 인트로 곡이다. 때로 치열하거나 혹은 무심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살아가는 우리의 머리 위로 빠르게 빛의 꼬리를 그리며 사라지는 커다란 우주와 그 반짝거림의 이미지를 담았다.
08. 검은 밤을 가르던
우연히 하늘을 올려다본 순간, 주변 건물의 좁은 틈 사이를 가로지르며 순식간에 사라진 유성에게 전하는 메세지이다. 2018년부터 꾸준히 라이브로 연주되어 왔던 곡이기도 하다. 이번 앨범을 통해 더욱 발전된 형태로 편곡되었다.
09. polydream
‘폴리드림(polydream)’은 2018년 네이버 ‘온스테이지’로 먼저 알려진 곡이다. 사실상 이 곡을 통해 2016년 발매된 EP [저마다 섬]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편역자인 오강남 교수는 ’도덕경’에서 ‘무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가만히 앉아서 무위도식하거나 빈둥거리는 것이 아닌 인간 사이에서 발견되는 인위적 행위, 과장된 행위, 계산된 행위, 쓸데없는 행위, 남을 의식하고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행위, 자기중심적인 행위, 부산하게 설치는 행위, 억지로 하는 행위, 남의 일에 간섭하는 행위, 함부로 하는 행위 등 일체 부자연스러운 행위를 하지 않는 것”
‘폴리드림(polydream)’은 이러한 뜻에서의 ‘무위’를 찬미하는 축제를 한바탕 벌이고 사라지는 것을 노래한다.
10. 무딘
앞서 나열된 곡 중 가장 힘을 뺀 곡으로 건반과 어쿠스틱 기타로 편곡되었다. 다브다에게 에너지란 절대 빠트릴 수 없는 요소이지만 이 에너지를 넓게 아우르는 ‘서정성’으로 인해 다브다의 음악은 하나의 큰 정조를 갖는다. ‘무딘’은 그 ‘서정성’만을 남겨 격렬한 아홉 트랙의 연주 뒤에 배치해 상대적으로 울림이 크도록 하였다.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트랙 ‘Light comes back’이 이미 벌어진 ‘사건을 무효화하려는 시도’였다면, 마지막 트랙인 ‘무딘’은 무뎌진 칼날 같은 삶의 길에 언젠간 마주치게 될 어떠한 ‘사건에 대한 경고’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