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한 해석과 절정의 기량
박세연의 현대 가야금 음악
미려(美麗)하고, 감각적이고, 세밀하고, 때론 날카롭고, 때론 강렬하게 응축된 힘으로 연주된 현대 가야금 음악을 찾는다면 이 음반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가야금 독주곡집 [금(琴)을 품다](악당이반, 2012년)에서 현대 음악을 연주하는 독주악기로서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던 가야금 연주자 박세연이,
이번엔 2019년 5월에 있었던 독주회 [가야금, 상상의 숲을 거닐다]에서 연주했던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두 번째 음반을 세상에 내놓았다.
현대 음악 작곡가 4인과 함께 고민하며 만들어낸 가야금 창작 음악 5곡이 수록된 이번 음반에는 명주실의 질감과 나무통의 울림이 손톱과 살갗과 맞닿아 발현된 다채로운 음색의 가야금 소리가 담겨있다.
서양음악 작곡으로 시작했지만, 한국음악에 대한 탐구와 사랑으로 이뤄낸 숱한 성과물로 증명한 네 분의 작곡가 작품으로 가득 채운 음반에는
이건용, 임준희, 도널드 리드 워맥, 그리고 토마스 오스본 등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넘나드는 당대 최고 작곡가의 가야금 음악이 햇살을 받은 모래알처럼 신비롭게 반짝인다.
작곡가와 연주자의 아주 잘 맞은 궁합이 가야금의 깊은 농현으로 표현된 현대 가야금 음반의 수작이다.
박세연의 이번 작업은 가야금 음악의 레퍼토리 확장이라는 의미를 넘어, 음악 듣는 내내 묘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작곡가와의 대화와 협업을 통해서 가야금 소리에 매력을 더할 방안을 함께 찾아 상상의 숲을 거닐었고,
결국 몽환적 상상력이 혼재된 ‘신화’나, 문학작품 속에서 발견되는 정제된 언어 속에서 가야금 음악의 실마리를 풀어냈다.
이렇게 얻은 영감은 작품의 이미지가 되고, 악보가 되고, 음악이 되었다.
이것은 문학작품을 읽을 때 느끼던 미묘한 차이에서 오는 특별함과 같은 경험으로, ‘문장’은 ‘마침표’에 의해 ‘의미’가 달라지고, ‘느낌표’는 움직임의 ‘동기’를 표현한다.
단어가 의미를 잃으면 말의 힘이 사라지지만, 단어에 뜻이 더해지면 의미가 강화된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미궁의 음표, 마디마다 매달린 보이지 않는 각주, 결코 쉽게 읽히지 않은 것들이 머릿속을 빽빽하게 만들어 주는 밀도 높은 악보를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해
가야금을 무릎에 올리고 작은 연습실에서 보낸 지난한 과정을 그녀는 결국 스토리 텔링으로 풀어냈다.
최종적으로 그녀의 손끝을 통해 음표들은 생명력으로 꿈틀하며 소리로 발현되었다.
숲의 나뭇가지에 앉은 새처럼 관찰력이 풍부해진 그녀는 예민한 지각과 세밀한 묘사로 곡마다 이야기를 덧붙여 작곡가의 의도를 자기 것으로 완성했다.
그녀에게 현대 음악은 재미나고 흥미로운 놀이이고 결국은 달콤한 해피엔딩으로 풀어냈다.
박세연의 완벽주의적인 성향과 문학적인 감수성은 대담한 해석과 절정의 기량으로 다섯 곡의 현대 가야금 음악을 경쾌하게 풀어냈다.
그녀는 시도를 넘어 가야금의 다양한 표현력과 예술적인 기교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었다.
대단한 집중력이고, 아찔하고 탁월하며 게다가 아름다운 음악으로 완성되었다.
박세연은 이번 음반을 계기로 기교는 물론 뛰어난 음악성뿐 아니라 진정성 있는 연주자로 인정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가야금 창작 음악에 문제 의식을 갖고 작곡가들과 오랜 시간 함께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귀하고,
또한 이러한 작업은 가야금 음악의 현주소와 경계를 가로지르는 과정이기에 개인의 성과를 넘어서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현대 음악으로 작곡된 가야금 음악이 극한의 아름다움으로 들리는 것은 박세연이 갖고 있는 아주 큰 장점이다.
음악평론가 현경채 Kyungchae, Hyun
[작곡가의 감상평]
이건용 Geon-yong Lee
- 박세연의 연주는 아름답고 지적이다. [여름정원에서]는 한 여름 정자에 앉아 쉬는 선비를 그리고 있는 음악인데, 박세연은 이를 가야금으로 자연스럽게 잘 표현하고 있다.
토마스오스본 Thomas Osborne
- 박세연 연주자가 보내준 제 작품의 연주 녹음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들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감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녀의 연주는 아름답고 정확할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 - 음악 안에 자신만의 목소리를 담아낸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이 곡의 연습에 아주 많은 시간을 할애했을 게 분명합니다. 이 작품을 박세연 자신만의 음악으로 완전히 소화하여 연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각 악장마다 작품이 가지고 있는 시적 이미지를 훌륭하게 표현하며 연주했습니다.
도날드 리드 워맥 Donald Reid Womack
- 연주자가 없으면 작곡가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작곡가가 어떤 음악적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연주자들은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작곡가는 훌륭한 연주자와 함께 일할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면 그만큼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작품의 많은 가능성이 열리게 됩니다.
2017년 가을, 박세연 연주자가 12현 산조 가야금과 25현 가야금 독주곡 두 곡을 함께 위촉하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제게 처음 요청했을 때 매우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해태]와 [구미호]라는 한국 신화에서 선과 악의 균형을 이루는 한 쌍의 작품이 탄생했습니다.
이 두 작품은 모두 빠르고 역동적인 테마에서 뿐만 아니라, 느린 테마 마저도 여러 번의 다양한 멀티 테크닉을 요구합니다.
까다로운 부분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어떤 부분에서는 미묘한 레이어드 음색의 질감과, 복잡한 리듬, 동시에 다양한 템포 변화가 있어 연주자의 양손이 악기를 지속적으로 넘나들며,
마치 마법을 부리듯 복잡한 수많은 테크닉을 수행해야 하므로, 연주자는 단 한 순간도 긴장을 풀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교적인 부분을 넘어, 연주자의 진정한 능력은 그들의 연주에서 드러나는 음악성에서 빛을 발합니다.
훌륭한 연주자는 매우 까다로운 음표를 모두 정확하게 연주하는 수준을 넘어, 자신만의 표현력으로 그 음표를 음악으로 바꿔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이것이 바로 박세연 연주자가 해낸 일입니다. 그녀는 나의 작품 [해태]와 [구미호]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음악으로 만들어내 들려주었습니다.
단순한 음표가 진정한 음악으로 바뀌는 경험은 모든 작곡가가 진정으로 원하고 꿈꾸는 일일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박세연과 함께한 것은 저의 특권이자 영광이었습니다.
가야금 연주자 박세연, 그녀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임준희 June-Hee Lim
박세연의 [젖은 옷소매]를 듣고,
- 박세연의 손끝으로 빚어내는 [젖은 옷소매]는 가야금의 뜯고 튕기는 터치 하나하나가 매우 정교하고 섬세하면서 동시에 다채로워서 숨을 멎게 할 만큼 아름답다.
이 작품은 한 여인이 베를 짜면서 자신의 깊은 상념과 시름을 베틀에 실어 무아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표현하고자 한 곡인데,
박세연 연주자는 [젖은 옷소매] 내면의 깊이 있는 슬픔과 한의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들을 잘 해석하여 때로는 청정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몰아감으로써 청중들을 순간순간 몰입시키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마치 도자기를 빚듯 오랜 시간 공들인 연마로 탄생 된 [젖은 옷소매]의 새로운 세계에 작곡가로서 깊은 감사와 기쁨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A Bold Interpretation and Technique at its Peak
Se-youn Park’s Contemporary Gayageum Music
One who seeks for contemporary gayageum music that is graceful, sensual, detailed, and played with sharpness and concentrated strength should pay close attention to this album.
Gayageum player Se-youn Park, who made herself and the instrument known as a solo instrument for contemporary music in the gayageum solo album [Embracing the Zithe] (Akdang Eban, 2012), has released a second solo album based on her repertoire from her recital in May 2020, [Gayageum, Wandering the Forest of Myth].
This album contains five original gayageum pieces carefully written and arranged with four contemporary music composers. The texture of the silk thread and the resonance of the wooden body manifests sounds of various colors in contact with the nail and flesh.
The album contains works of the four composers, Geon-yong Lee, June-hee Lim, Donald Reid Womack, and Thomas Osborne who started their career with Western music, but proved their love and knowledge of Korean music through many achievements.
This contemporary gayageum album is a masterwork, with pieces that cross over the borders of Western and Eastern music, written by the best of our times in perfect chemistry with the performer.
This album by Se-youn Park goes beyond the expansion of her gayageum music repertoire, and offers a mysterious attraction throughout the music. Through dialogue and collaboration with the composer, she wandered through the mythical forest in search of a way to add charm to the sound of gayageum.
She resolved the clues of gayageum into a refined language found in mythological and literary works mixed with dreamlike imagination. The inspiration from the process became the image, the score, and the music of the album.
This experience is something like that special feeling you get from subtle differences and reading literary works. The ‘meaning’ of a ‘sentence’ is changed with a ‘period,’ and an ‘exclamation mark’ expresses the ‘motive’ of the movement. When a word loses its meaning, the power of speech is weakened. But adding the will to a work strengthens the meaning.
She tells the story of how the labyrinth of difficult notes, the invisible footnotes that hang from every measure, the dense sheet of music that fills the mind were made her own, with her efforts and the hours she passed in her practice room, alone with just the gayageum on her lap. Finally, the notes writhed with vitality and manifested as sounds at her fingertips.
As observant as a bird on a branch in the forest, she added a story to each piece with sensitive perception and detailed description to complete the composer's intentions. For her, contemporary music is a fun and exciting game that is eventually expressed as a sweetly happy ending.
Se-youn Park's perfectionism and literary sensibilities unleash the five contemporary gayageum pieces with bold interpretation and technique at its peak. She goes beyond trials and shows a new level of gayageum's diverse expressiveness and artistic techniques.
It is of great concentration, dazzling, excellent, and beautiful music. With this album, Se-youn Park will be recognized not only for her technique, but also for her outstanding musicality and sincere performance. This is valuable in a sense that it is the result of much time invested in collaboration with composers, with critical mind on original gayageum music.
It is also important as it is not just a personal achievement, but the process to the next level over the current boundaries of gayageum music.
Se-youn Park’s greatest strength is the ability to perform a contemporary gayageum piece with extreme beauty of musicality.
Music Critic, Kyungchae Hyun.
[Review by Composer]
Geon-yong Lee-
Se-youn Park’s performance is beautiful and intelligent. [In the Garden of Summer] portraits a Seonbi (scholar) resting in a gazebo, and she played this very naturally expresses with gayageum.
Thomas Osborne -
I wanted to take time to listen to the files her sent me. I just finished listening, and I'm impressed! She play these pieces beautifully. Not only do her play them with precision,
but – most importantly – she bring her own voice to them. It's clear to me that she has spent a lot of time with this music, because she play it in a way that is uniquely her own.
She has brought out the poetry in each piece.
Donald Reid Womack -
Without a performer, a composer is incomplete. Whatever musical ideas a composer might come up with, it takes a performer to bring to them to life.
Any composer relishes the opportunity to work with great players, since doing so opens so many possibilities of what one might create.
Thus, I was happy when Seyeon Park approached me with the very ambitious project of commissioning not just one, but two solo pieces, one for sanjo gayageum and one for its 25-string counterpart.
The resulting works, Haetae and Gumiho, were conceived as a complimentary pair of sorts, a balance of good and evil from Korean mythology.
Both works call for great virtuosity, not just in the many fast and acrobatically exciting passages,
but, perhaps less obviously, in the slower passages as well, which, at various times, call for a multitude of techniques, nuanced textures of layered voices, rhythmic complexity, and multiple simultaneous tempos, among other demanding facets.
The player rarely has a moment to relax, as each hand is required to constantly leap around the instrument and perform numerous functions – a complex musical juggling act of sorts.
Beyond sheer virtuosity though, the true abilities of a performer shine through in the musicality they bring to a work. A great performer can take all those very challenging notes and not just play them correctly, but somehow make them speak expressively, tell a story, turn the notes into music.
This is what Seyeon Park has done. She has brought my work to life, told the stories of Haetae and Gumiho, and turned my mere notes into actual music, the experience every composer hopes for. It has been my privilege and honor to work with her on this project, for which she has my gratitude.
June-hee Lim -
Comment on Se-youn Park’s [Wet Sleeve]
Se-youn Park’s fingertips play each note of [Wet Sleeve] with a elaborate and delicate touch, and they are colorful enough to take away the audience’s breath.
This piece portrays a woman, weaving cloth while trying the weave her deep thoughts and wrestling into the loom to reach the state of selflessness.
Se-youn Park interprets the deep sorrows and the complex, diverse emotions in [Wet Sleeve], forming a consensus with the audience with sometimes clear, and sometimes passionate playing.
As a composer of this piece, I would like to express my deepest gratitude to the new world of [Wet Sleeve] that she created, this piece was made as though baking a porcelain, through her most dedicated efforts and polishing.
[TRACK]
01. 여름 정원에서 | 작곡 : 이건용 | 산조 가야금 : 박세연
풀벌레 소리 자욱한 한여름의 밤은 싱그럽다.
장마를 막 지난 나무들은 물기를 머금고 초록 내음을 뿜는다.
턱을 괴고 이를 한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원은 숲이 되고 그 숲은 몽환의 안개 속으로 나를 이끈다.
그 길을 배회하며 날다. (박세연)
이 곡은 작곡가 이건용의 두 번의 여름 체험이 담겨있다.
2010년 파리에서 “너무나도 짧았던 우리의 힘찬 여름 빛”이라는 보들레르의 말이 과장이나 은유가 아닐 정도로 건조한 여름 햇빛은 눈부셨고 길었으며, 가을빛이 가까워지자 성큼성큼 어두워졌다.
다음 해 여름 담양 명옥헌을 찾았다. 숨 막힐 듯한 더위, 짙은 녹음, 나무와 물 위를 덮고 있는 새빨간 배롱나무꽃, 바람 부는 정자, 들릴 듯 말 듯 들려오는 물소리....
정가 한 자락이 배어 있는 정경이었다. 보들레르와 정가가 어떻게 어울리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둘 다 나의 시심을 형성하는 원형질들이다.
그 둘을 엮어 12현 산조가야금으로 오랜만에 여름을 노래해 보았다. 보들레르의 시는 다만 배경을 이루고 있고, 곡의 중간에 나오는 노래는 조선조의문인 정두경의 시조 중 초장과 중장이다. (이건용)
02. [하늘에 대하여] 제1악장 - 눈먼 소녀들의 달에 대한 궁금함 | 작곡 : Thomas Osborne | 산조 가야금 : 박세연
하늘은 잠시 붉어졌다 이내 푸르러진다.
저 멀리 들리는 소녀들의 재잘거림은 달과 별을 궁금해한다.
그 묘한 달무리는 그윽해서 신비롭고
부드러운 별빛은 노래를 품은 듯 청아하다. (박세연)
Pieces of Sky는 2009년에 제가 한국 전통 악기를 위해 쓴 첫 작품입니다.
이 곡을 작곡할 시기에 저는 스페인 작가 프레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를 읽곤 하였습니다.
그의 시는 종종 달과 태양 등 우리의 대자연 속 이미지를 연상케 했고, 이러한 시적 이미지의 영향으로 네 개의 짧은 소품을 작곡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각 악장은 하늘의 여러가지 이미지- 해, 달, 별을 묘사하는 로르카의 시에 근원을 두고 있으며, 마지막 악장 ‘노래하는 일곱 소녀들’은 무지개를 시적으로 묘사한 곡입니다.
저는 이것을 시의 구절에서 가져와 작곡했으며, 각각의 악장은 가야금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음색으로 표현될 것입니다.
이 작품은 2009년 여름, 서울에서 가야금 연주자 이지영에 의해 초연되었습니다. (토마스 오스본)
03. [하늘에 대하여] 제2악장 - 당신의 환상, 태양은 정원을 천연색으로 바꾸다| 작곡 : Thomas Osborne | 산조 가야금 : 박세연
04. [하늘에 대하여] 제3악장 - 별들의 부드러운 저항 아래에서 | 작곡 : Thomas Osborne | 산조 가야금 : 박세연
05. [하늘에 대하여] 제4악장 - 노래하는 일곱 소녀들 | 작곡 : Thomas Osborne | 산조 가야금 : 박세연
06. 달에 비친 아홉 꼬리 [구미호] | 작곡 : Donald Reid Womack | 25현 가야금 : 박세연
저 안개 너머 흐느껴 울고 있는 뒷태가 보인다.
호수에 비친 아홉 꼬리는
인간이 되기를 열망하는 구미호의 감추고픈 정체성.
인간과 사랑에 빠졌으나 결국 사랑하는 그를 죽여야만 본인이 살 수 있는
운명의 저주 앞에 고민해온 영겁의 세월...
이 밤, 새벽닭이 울기 전까지 그녀는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기괴한 마물(魔物)로 치부하기엔 가련한 사랑이 애달픈 존재.
마침내 그녀가 숲을 가르고 긴박하게 달려가기 시작하는데.... (박세연)
구미호는 동아시아 지역의 신화와 전설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입니다.
한국에서 구미호는 전설 속의 신비롭고 매혹적인 짐승인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로, 인간을 유혹해 결국 인간의 간을 먹고 사람으로 환생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달에 비친 아홉 꼬리 ’구미호’ 는 이 신비한 존재와 그 모순된 성격을 상상한 작품입니다.
매혹적이지만 치명적이며, 괴물이지만 인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인간이 되기를 괴로워하는 고뇌에 시달립니다.
이 작품의 도입부는 신령하고 강력한 구미호를 소개하면서 시작됩니다. 대자연의 숲속을 뛰어다니며 먹이를 찾아 헤매다가도, 때로는 이상하리만치 아름답습니다.
음악이 대조적인 성격의 부분을 통해 진행되는 사이 마침내 그녀의 무서운 자아를 완전히 드러내지만, 우리는 그녀가 외롭고 슬프다는 것 또한 알게 됩니다.
잔인한 운명을 이겨내고 인간이 되고자 그녀가 먹이로 삼은 바로 그 인간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최후까지 그녀의 본성을 극복하려고 애쓰면서 자아를 키웁니다. 결국, 구미호는 사랑의 손길로 남자를 부드럽게 유혹하여 그가 자신을 신뢰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본능대로 인간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인간이 되고자 하는 본능과 충동을 이겨내고 사랑을 택할까요?
그 운명의 비극을 완전히 이해하게 될 때쯤에야, 마침내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올 것입니다.
25현 가야금 독주곡 [달에 비친 아홉 꼬리 ‘구미호’]는 가야금 연주가 박세연의 위촉으로 2018년에 작곡되었고,
2019년 5월 21일 서울의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린 박세연 가야금 독주회 ‘상상의 숲을 거닐다’ 에서 초연되었습니다. (Written by Donald Reid Womack)
07. 해태 | 작곡 : Donald Reid Womack | 산조 가야금 : 박세연
불의 기운을 막는 해태는 그래서 외려 숲에 어울린다.
가만히 웅크리고 인간 세상의 시비를 꿰뚫어 보는 눈매가 매섭다.
급한 성질로 하나뿐인 뿔을 곧추 세우면
지금이라도 숲을 뛰쳐나가 불의를 단죄할 기세다.
숲의 기운이 보다 강인하고 역동적으로 변할 시간이다. (박세연)
동아시아 신화에서 가장 사랑받는 생물 중 하나인 해태는 한국에서도 현명하고 강력한 정의의 수호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태는 일반적으로 머리에 뿔이 달린 사자의 형태를 취하며, 옳고 그름에 대한 본능적 지혜로 죄인을 단죄하고 의인을 보호합니다.
조선 왕조(약 15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재해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고 정의를 지키기 위해 건축물에 ‘해태’ 모형을 사용했으며,
오늘날에도 종종 궁전과 중요한 건축물의 외부에서 해태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2008년에는 서울시가 해태를 공식 마스코트로 채택하기도 했습니다.
산조 가야금을 위한 [해태 Haeta]는 전설적인 해태.. 야수의 강렬하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표현합니다.
음악은 짧지만 강렬한 패시지로 시작하여 그 결말을 예고합니다. 점차 느린 섹션이 이어지지만, 해태의 힘이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지 그 에너지는 폭발할 수 있습니다.
자유로운 중간 부분은 안정적이지만은 않고, 이는 곧 있을 해태에 대한 도전을 암시하며, 결국 해태는 힘겹지만 단호하게 결정적인 파괴력을 발휘합니다.
12현 가야금 독주곡 [해태]는 25현 가야금 독주곡 [달에 비친 아홉 꼬리 ‘구미호]와 선과 악의 균형을 이루는 한 세트입니다.
박세연 연주자의 위촉으로 2018년 12월에 완성되었고, 2019년 5월 21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린 박세연 가야금 독주회 ‘가야금 상상의 숲을 거닐다’ 에서 초연되었습니다. (Written by Donald Reid Womack)
08. 가야금 독주를 위한 [젖은 옷소매] | 작곡 : 임준희 | 18현 가야금 : 박세연
숲이 고요를 되찾을 무렵
어디선가 들려오는 베틀 소리가 처연하다.
세상의 변화와 숲의 투쟁을 알 일 없는 여인은
그저 누군가를 기다리며 옷을 짓는다.
어떤 가슴 시린 이별이었기에 얼마나 오랜 기다림이기에
눈물이 지금껏 흐른단 말인가. (박세연)
[젖은 옷 소매]는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된 것으로,
한 여인이 베를 짜며 상념에 젖어 지나온 삶에 대한 회한과 돌아오지 않은 임을 그리워하는 심정을 18현 가야금의 선율에 실은 곡이다.
독주 가야금의 선율은 생의 씨줄과 날줄이 교차하듯 때로는 고요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음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 생의 무늬를 짜나간다.
이 곡의 전체적인 형식은 9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내용 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 전통음악 산조와 같이 느리게 시작하여 점차 빨라져 마지막에 감정이 고조에 달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임준희)
베틀에 앉아
옷감을 짜며
그리움으로 뭉쳐진
마음의 응어리가
맺혔다가 풀어졌다가
산 같은
열망으로 변했다가
물 같은 거품으로
사그러 들었다가
베틀에 얹혀진
선율과 함께
이리 흐르고
저리 흐르다가
방울 방울로 모여져
끝내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옷 소매를 적신다. (혼불中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