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나를 지나갈 때
강아솔의 새로운 싱글 [아무 말도 더 하지 않고]
도움에 대해 생각한다. 도움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 때. 좋아하는 영화도, 화창한 날씨도, 초콜릿 케이크와 신선한 원두의 향기도 나를 만지지 못할 때, 오롯이 혼자서만 감당해야 하는 감정들이 나를 밀치기 시작하면 정말이지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힘내라고 손을 내미는 누군가에게 조차 이렇게 밖에 말할 수 없다. 정말 미안하지만, 나 지금 혼자 있고 싶어. 혼자 있다는 건 뭘까? 스스로를 고독과 어둠의 방으로 내몰고 당신과의 경계조차 허물어버리는, 그건 정말로 지독한 악몽일까? 해서는 안 되는 일일까?
강아솔의 ‘아무 말도 더 하지 않고’를 들으면 홀로 방안에 앉아 어둠을 응시하는 것만이 어떤 방법이 될 때를 떠올리게 한다. 그건 또 다른 차원의 위로이거나 능력, 혹은 자질일지도 모른다. 혹은 어떤 종류의 생존 키트다. 슬픔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슬픔에 대항하는 것, 슬픔이 나를 지나가도록 허용하는 것, 슬픔을 통과하는 사람을 내버려두는 것. 이 노래는 그러한 순간으로 가득하다. 노래가 순간이 되는 경험이 있다면 바로 ‘아무 말도 더 하지 않고’의 모든 부분일 것이다.
강아솔의 3집 [사랑의 시절]을 통해 놀라운 위무와 사랑의 순간을 경험했다면 ‘아무 말도 더 하지 않고’는 더욱 특별한 공간으로 의미를 확장한다. “어둠을 헤치지 말아요 불빛만이 슬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건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강아솔의 목소리에는 온전한 슬픔을 지나쳐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체념과 아름다움이 서려 있다. 우리는 슬픔에게 어서 사라지라고,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라고 한다. 그러나 슬픔도 안다.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걸. 그러나 슬픔의 발걸음이 너무 크고 무겁다는 걸 우리는 모른다. 슬픔이 사라지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그래서 우리는 때로 홀로 슬픔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속도가 나지 않는 나의 이별”(‘당신의 파도’)을 겪고 “그대가 건네준 온기를 신고”(‘매일의 고백’) 달려간 곳에서 우리는 행복을 만날 수도, 새로운 사랑을 만날 수도 있다. 혹은 지독한 슬픔일수도 있겠지.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래도 우리”(‘그래도 우리’) 사랑을 하는 오늘처럼, 언젠가는 이 슬픔이 나를 지나쳐 멀리 떠날 거라는 걸. 슬픔을 건너 우리도 몰랐던 또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을 거라는 걸.
글/ 소설가 지혜
“슬픔이 마음을 덮을 때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곤 했다. 어떤 방해도 없는, 누구의 간섭도 없는 곳에서 마음껏 슬퍼할 시간이 필요했다. 슬픔을 오롯이 슬픔으로 마주하는 시간. 이 노래는 그 시간에 대한 노래이다.” by 강아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