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코포니 (cacophony)' [和(화)]
슬픔을 이겨내는 방식은 저마다 다양하겠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슬플 때일수록 슬픈 노래를 찾아 듣는다. 슬픔의 에너지를 더 큰 슬픔을 통해 극복해내는 고전적인 슬픔의 극복 방식이다. 우리의 슬픔과 우울에는 분명한 에너지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기쁨의 에너지보다 더 크게 작용한다. 슬픔의 에너지는 지나간 자리를휩쓸고 폐허로 만들고는 하지만 폐허가 된 자리를 다시 쌓아 올리게 하는 힘도 슬픔의 에너지다. 때로 어떤 감정은 우리에게 다시 살아가야 할 이유와 동력이 되기도 한다. 폐허를 통한 세계의 재구축이다.
카코포니(cacophony)의 [和(화)] 는 그녀가 오랜 병 투병 끝에 떠나보낸 어머니를 생각하며 만든 앨범이다. ‘쥬마루드’라는 그룹으로도 잠시 활동한 적이 있는 그녀는 어머니를 잃고 접었던 음악을 다시 시작했다. 어머니로부터 자신의 예술적 기질을 물려받았다는 그녀는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보며 다시 음악을 해야겠는 마음을 먹었다. 형언할 수 없는 절망과 폐허 속에서 탄생한 노래들이라는 사실 만으로도 나는 이 앨범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힘들다.
카코포니(cacophony)가 전곡의 작사 작곡을 맡은 이번 앨범은 듣는 이들에게 어떤 일관된 감정을 자아내게 만든다. 바로 치열하고 처절한 그녀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생에 대한 의지다. 그건 하나의 세계가 자신의 앞에서 사라지고 난 뒤에 다시 본인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이의 시작과 끝을 닮았다. 파괴와 생이라는 모순된 두 단어는 이 앨범 안에서 서로 和를 이루고 있다.
앨범에서는 이제는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함께 노래하며(숨), 노래 안에서 여전히 어머니를 느끼며(Comme un poisson dans le ciel), 미처 피워내지 못한 그녀의 꿈을 간직하고 살아가겠다는 의지(White)가 느껴진다. 그건 노래할 수 있는 이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을 때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추모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녀의 앨범을 들으며 가장 많이 떠올렸던 것은 바로 프랑스의 국민 가수 에디트 피아프였다. 아픈 봄이었지만 당신과 함께했기에 꽃이 피는 것을 기다릴 수 있었다는(봄) 그녀의 목소리는 삶이 늘 잔인한 농담을 던질 때도 인생이 장밋빛이라며 노래하던 애절한 목소리의 에디트 피아프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둘의 목소리가 갖는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절망과 좌절의 단면을 닮아있다는 점이다. 절망과 좌절을 닮은 목소리라는 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런 종류의 목소리는 절망을 통해 새로운 내일을 노래하는, 파괴를 통해 세계를 재구축하는 이들을 위로하기에 더없이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Written by 작가 윤정욱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