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 Kil Moon' [Common As Light And Love Are Red Valleys Of Blood]
1980년대 말부터 슬로코어/새드코어 씬의 중추적 존재였던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Red House Painters)'의 프론트맨 '마크 코즐렉(Mark Kozelek)'은 2002년도부터 한국의 복싱선수 '문성길'의 이름을 따서 '선킬문(Sun Kil Moon)'이라는 예명으로 활동 중이다. 이따금씩 자신의 본명으로 앨범을 낼 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선킬문'의 타이틀을 달고 활동해나가고 있다.
그는 여전히 꾸준하게 작업과 투어를 병행해나갔고 특히 2014년 작 [Benji]가 큰 사랑을 받았다. 물론 데뷔작 [Ghosts of the Great Highway]와 '모데스트 마우스(Modest Mouse)' 커버 앨범 [Tiny Cities], 그리고 감동적인 [April] 등 앨범을 낼 때마다 평단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하곤 했다. 내한공연에서도 은은한 노래뿐만 아니라 특유의 입담과 돌발행동으로 국내 팬들에게 짙은 인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Common As Light And Love Are Red Valleys Of Blood]
2014년도 걸작 [Benji], 그리고 2015년 작 [Universal Themes]에 이은 8번째 '선킬문' 명의의 작품이다. 이 역시 매우 자전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으며, 긴 러닝타임으로 이루어진 곡들로 채워내면서 2CD로 제작됐다. '선킬문' 명의로는 과거에도 간간히 보너스 CD를 포함해 2CD 포맷으로 발매해낸 적이 있었다.
[Benji]와 [Universal Themes] 이후 다시금 '소닉 유스(Sonic Youth)'의 드러머 '스티브 셸리(Steve Shelley)'와 함께 녹음해냈다. '마크 코즐렉'은 앨범에서 드럼을 제외한 모든 악기를 연주했는데, 그는 '스티브 셸리'와 스튜디오에서 음악을 만들고 함께 멕시코 음식을 먹었다.
담담하게 리듬을 새기는 드럼, 건조한 베이스 리프와 섬세한 어쿠스틱 기타의 아르페지오가 희미하게 펼쳐진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심플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뜨거움과 긴장감이 더해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일부러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고 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묘한 애수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다.
데뷔 앨범 수록곡 "Carry Me, Ohio"의 연장선에 위치한 듯 보이는 "God Bless Ohio"로 앨범이 시작된다. 이는 앨범발매 이전부터 미리 공개된 싱글이다. "Butch Lullaby"에서는 마치 랩을 하듯 단조롭게 읊조리는데, 최근 인터뷰에서 그는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의 [To Pimp a Butterfly]를 훌륭한 앨범이라 칭송한 바 있다. "Sarah Lawrence College Song"에서는 19세 학생 '프로모터 맥스'의 편지를 그대로 읽기도 한다. "Bastille Day"의 경우 올겐 소리와 격렬한 분위기 때문에 간혹 '도어즈(The Doors)'처럼 들리는 구석이 있다. 이처럼 의외로 여러모로 다양한 구색을 갖춰내고 있다.
*현재 '선킬문' 공식 홈페이지에는 `브라이트 아이즈(Bright Eyes)`의 '코너 오버스트(Conor Oberst)'가 '마크 코즐렉'에게 질문하는 형식의 인터뷰가 게재되어 있다. 이번 음반에 관한 내용들도 종종 보이는데 그 중 몇 가지를 추려본다.
-극도로 자전적인, 그리고 어두운 노래를 불러온 '마크 코즐렉'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노래는 대부분이 사실이며, 그것이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베이스라인이 두드러지는 "Lone Star" 같은 곡이 '도날드 트럼프(Donald Trump)' 당선 이후에 쓰여진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이번 앨범을 대통령선거 이전에 끝마쳤다고 밝혔다. 자신의 계획은 노래를 계속 쓰고 생산해내면서 가능한 세상에 긍정적인 것을 더 많이 내놓는 것이라고 언급한다.
-초창기 '선킬문' 곡 같은 선율이 있는 "I Love Portugal"은 스위스 베른에서의 공연이 취소됐을 무렵 길에서 쓴 곡이다. '코너 오버스트'의 친구가 뉴욕에 포르투갈 식당을 열었다고 말하자 '마크 코즐렉'은 포르투갈 음식을 케이준, 그리고 한국음식과 함께 가장 좋아한다 말하기도 했다.
-여전히 죽음에 대해 자주 노래하는 그는 이제 곧 50세를 맞이하게 된다. 내세가 있는지 모르지만 그것에 의존하지는 않는 편이라고 한다. 그는 -이미 가사에서 파악 가능하듯-현실주의자이며 삶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번에도 '마크 코즐렉'은 앨범에서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노래하기 보다는 이야기하고 있다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현재의 인터넷 세대를 바라보는 '마크 코즐렉'의 인터뷰 말미의 글이 인상적이어서 그대로 옮겨본다.
"…(인터넷 세대들은) 현재의 커피샵들이 과거 레코드 가게였다는 사실을 덜 신경 쓸 것이며, 영화 [이디오크래쉬(Idiocracy)]의 등장인물처럼 인터넷에 중독되어 있다. 그들은 실리콘 밸리가 판매하는 모든 것을 의심 없이 구입한다. 인터넷의 양상이 그들에게 어떤 희망이나 진보를 가져오지는 않기 때문에 나는 그로부터 벗어나 있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는 편이다. 게다가 '트럼프'는 현재 트위터라는 매체를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며 때문에 내가 그것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기는 어렵다."
억양이 거의 없는 멜로디로 퉁명스럽게, 그리고 격양된 목소리로 가사들을 읊고 있다. 이따금씩 이는 혼잣말을 투덜투덜 중얼거리는 것처럼 들리곤 한다. [Universal Themes]에서부터 감지되어온 것이지만 아예 멜로디 조차 포기하고 스토리텔링에 집중하는 부분들이 있어 초창기 '선킬문' 시절과 비교하면 무척 다르게 들린다. 이런 방식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온 초창기 앨범, 혹은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 시절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해체해나가고 있다는 인상마저 준다. 그럼에도 선킬문 특유의 세계관, 그리고 흐름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음을 체감할 수 있다.
경험한 사실만을 담담하게 에세이처럼 풀어나가고 있다. 스토리텔러로서의 재치는 물론 연륜이 묻어나는 사운드 프로덕션 또한 여전히 발군이다. 초기작들에 비해 서정적인 부분들은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의외로 인간적인 부분들이 더욱 두각을 나타내가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글_한상철(불싸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