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정아' [Serenade]
Serenade : '저녁음악'의 뜻.
Serenade 는 본래 저녁의 음악을 뜻한다. 많이 알려진 의미는 사랑 노래인데, Serenade 가 뜻하는 몇 가지 의미 중 하나이다.
대부분의 제 노래들이 낮보다 밤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해왔고, 모양은 다르지만 모두 사랑을 뿌리로 두고 자란 노래들이라 ‘Serenade’라는 제목을 지었습니다. 저녁에 여러분들의 귓가에 이 16개의 사랑 노래들을 들려드리는 마음으로 정규 3집을 발매합니다.
- swja
이것은 슈퍼맨의 S가 아닌 선우정아의 S.
"S"의 트릴로지, 그 마지막 챕터.
3/3 [Serenade]
돌이켜보면 ‘선우정아’라는 이름의 존재감은 그녀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때부터 늘 컸다. 정규 2집이었던 2013년작 [It’s Okay, Dear]가 그만큼 강렬하고도 선명한 첫인상을 뇌리에 새긴 탓이다. 이 앨범을 기점으로 음악가, 프로듀서, 평단 등 음악 씬에 속한 이들, 그리고 촉이 예민한 리스너들이 일찌감치 ‘다른 차원의 재능’이 등장했음을 감지했고 이에 열렬한 호응을 보낸 반면, 그녀의 음악이 다수의 대중들 속으로 온전히 진입해 정착하기까진 이후로도 얼마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 시간들 동안 그녀는 꾸준히 좋은 작품들을 발표했고, 개성 뚜렷한 무대들을 만들어냈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루트로 대중들과의 접점을 만들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장시켰다. 이윽고 2019년의 끄트머리에 다다른 지금, 선우정아를 소개하기 위해 어떤 정보의 조각들을 구구절절 나열하는 건 대중들에게, 그리고 그녀 자신에게도 피차 실례가 될 것이다.
정규 2집 이후 마치 자신이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는지 가늠하듯 음악적으로 결이 다양한 싱글들을 산발적으로, 하지만 꾸준히 발표했고, 그 와중에 [4X4] EP처럼 독특한 형식의 릴리즈나 여러 동료 음악가들과의 협업도 드문드문 해온 그녀의 정규 3집은 올해 돌연 예고되었고 덜컥 실행에 옮겨졌다. ‘앨범’이라는 큼직한 덩어리를 각기 다른 콘셉트의 세 파트로 쪼개어 순차적으로 공개, 마지막 파트에서 비로소 온전한 앨범이 완성되는 방식. 두 장의 EP [Stand]와 [Stunning], 그리고 앞서 두 파트를 아우른 정규앨범 [Serenade]로 이어지는, 소위 “S”의 트릴로지다.
트릴로지의 마지막 챕터인 정규 3집 [Serenade]는 구성적으로는 ‘Serenade’에 해당하는 새로운 악곡들이 전면에 배치되고 그 뒤를 이어 ‘Stand’, ‘Stunning’ 파트의 곡들이 각각 순차적으로 배열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언뜻 그저 큰 덩어리들을 툭툭 갖다 붙인 듯 심플한 선택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앨범 전체에 자연스러운 흐름, 맥락이 부여되었는데 이는 각 파트가 - 저마다 다른 정서, 프로덕션의 방향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 하나로 모여 앨범으로 완결되었을 때의 청사진이 애초에 일정 정도 디자인되어 있었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앨범'이라는 긴 호흡의 이야기의 시작에 걸 맞는 제목의 오프너 '인터뷰 (Interview)'는 살면서 종종 찾아오는 버거운 순간들, 그때의 버거운 감정들에 대해 노래하는 곡. 보컬과 사운드에서 모두 재즈의 바이브가 묻어나는 도회적이고 세련된 팝이지만 노래 속 주된 정서는 소모되어 지친 감정의 응어리들이고 그건 마치 '군중 속 나'로 살아가는 우리들 그 자체다. 곡에서 유일하게 전자음악적인 터치를 가미해 잠시 현실을 이탈하는 듯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부여하는 브릿지 부분의 편곡이 재미있다. 이어지는 곡 ‘도망가자 (Run With Me)’는 피아노의 선율을 중심으로 대규모의 현악이 가세한 스케일 큰 정통 발라드. 현실에 지친 연인의 마음을 보듬듯 애틋한 사랑의 언어들을 흩뿌리는 호소력 짙은 보컬, 애잔하게 시작하지만 차츰 고조되어 이윽고 풍부한 현악 오케스트라와 함께 드라마틱한 절정에 이르는 기승전결 뚜렷한 전개는 숨죽인 채 몰입해 보는 한 편의 슬픈 멜로 영화 같다. 통속성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아마도 '세레나데'라는 앨범 제목에 가장 어울리는 곡이다. 앨범 타이틀과 동명의 곡 ‘Serenade’는 다채로운 질감의 전자음들과 다소 기계적인 뉘앙스의 프로그래밍된 드럼을 바탕으로 일렉트로닉-팝과 얼터너티브 알앤비 사이를 오묘하게 넘나든다.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을 위한 자장가 같은 곡으로 3집의 전체적인 정서를 관통하는 곡이다. 이어지는 ‘멀티 플레이어 (Multi Player)’는 전작들에서부터 자신의 내/외면의 갈등, 혹은 처지 등을 가감 없이 묘사하곤 했던 그녀가 다시 한 번 속내를 드러내는 다분히 자조적인 곡으로 그 태도나 정서에서 2집의 ‘뱁새’나 ‘알 수 없는 작곡가’ 등과 연결점이 있다. 다소 처연한 분위기의 멜로디와 은근한 냉소가 담긴 노랫말이지만 건반 중심의 위트 있는 편곡을 통해 오히려 가벼운 터치의 팝으로 표현되었다. 이어지는 두 곡 ‘욕의 여행 (Bad Word's Travel)', ‘SHUTHEFXXKUP’은 2집에서부터 쭉 함께해온 선우정아 밴드 오리지널 멤버들이 모두 참여해 레코딩한 곡들로 선우정아 특유의 위트가 특유의 언어 감각으로 표현된, 익살스럽고 유쾌한 분위기의 팝 넘버들. 일상에 가득한 욕의 언어들을 미세먼지에 비유한 ‘욕의 여행 (Bad Word's Travel)'이 끝나자마자 바로 ‘SHUTHEFXXKUP’으로 이어져 “Shut The Fxxk Up!”을 외치는 트랙 배치의 아이러니한 재미와 함께 '세레나데', '클래식', '쌤쌤'까지 이번 트릴로지의 주요 곡들의 제목이 'SHUTHEFXXKUP'의 가사 안에 교묘히 녹아있음도 이내 캐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장난기 섞인 팬 서비스와 함께 “Be Yourself!”를 크게 외치는, 역시나 선우정아다운 곡이다.
‘Stand’ 파트의 첫 곡이었던 ‘쌤쌤 (SAM SAM)’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저 '위로 올라가려는' 맹목적 욕망만이 지배적 가치가 된 뒤틀린 세상과 거기에 속한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 어쿠스틱 기타의 선율을 중심으로 다양한 악기들이 가세해 다채로운 변주를 만들어내는 정교하고도 세련된 편곡이 인상적인 팝으로 적재적소에 쓰인 샘플링된 소리들, 곡에 엄숙한 기운을 더하는 관악 편곡과 가스펠 풍의 풍성한 코러스 등 곡을 한층 근사하게 만들어주는 다양한 음악적 장치들의 절묘한 배치는 '프로듀서' 선우정아의 진가를 새삼 느끼게 한다. 한때는 태산 같았지만 어느새 너무 작아져 버린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의 감정 같은 것, ‘수퍼히어로 (Superhero)’의 주된 정서다. 곡 전반에 음울하게 깔리는 베이스신쓰, 비장미가 느껴지는 힘찬 일렉기타 리프가 인상적인 곡으로 후반부에 비장미를 더하는 현악 사운드는 ‘강이채’의 'Dear Jazz Orchestra'가 열연했다. 곡에 마침표를 찍는 반짝이는 텍스쳐의 신쓰 사운드는 끝내 따뜻한 위로의 말로 빛 바랜 영웅을 감싸 안으며 ‘내가 당신의 히어로’가 되는 가사처럼, 이 이야기가 결코 새드 엔딩이 아님을 암시하는 듯하다. 한편 이별을 목전에 둔 이의 감정을 격정적으로 표현하는 애절한 발라드 ‘Ready’는 어쿠스틱 피아노와 선우정아의 보컬만으로 선이 굵은 감정선의 전개를 그려내는 곡. 잔잔하게 깔리는 멜로트론의 소리는 한층 더 애수에 젖은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3집의 백미로 꼽을 만한 곡 ‘배신이 기다리고 있다 (Betrayal Awaits)’는 오래 전에 쓰여져 라이브에서 이따금씩 선보였던 곡을 뒤늦게 정식으로 녹음, 비로소 '레코딩'으로서 실체를 갖추게 된 곡. ‘친구의 배신’ 혹은 ‘나의 배신’을 의인화한 활유적인 위트 속에 잔뜩 날이 선 냉소가 도사린 이 곡은 장난스러운 뉘앙스의 메인 테마와 힙합적인 리듬, 정신없이 뒤섞이는 일렉기타, 신쓰노이즈, 그리고 이펙팅으로 왜곡된 보컬이 어우러져 벌이는 난장판으로 표현된다. 이어 다분히 즉흥적으로, 의식의 흐름에 따라 만들어진 곡이라는 ‘My Birthday Song’은 똑딱이는 시계태엽 같은 리듬, 외롭고 쓸쓸한 무드를 담아 뭉근하게 깔리는 다양한 신쓰 소리들이 어우러진 멜랑콜리한 발라드로 어딘지 적막한 겨울 밤의 이미지와 맞닿아 있다. 개인적으로 영화 '휴고'의 주인공인 소년 휴고의 시계탑 속 고독한 일상을 문득 떠올렸다.
앨범의 마지막 파트인 ‘Stunning’은 스케일 큰 소울 발라드 ‘Fall Fall Fall’로 시작된다. 피아노를 중심으로 오르간과 일렉베이스, 그리고 가스펠풍의 풍성한 코러스 등이 어우러져 격정적인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이 노래는 소울 음악의 예스러운 무드와 더불어 농익은 ‘어른의 멋’이 가득하다. 마치 모타운 전성시대, 담배 연기 자욱한 클럽에서 노래하는 소울 디바의 무대를 21세기로 끌어 올린 듯한 곡. 삶은 종종 종착지를 알 수 없는 험난한 여행이다. 피아노와 어쿠스틱기타의 선율이 중심이 되어 전개되는 관조적 무드의 팝 ‘생애 (LIFE)’는 이처럼 지난한 삶의 여정을, 시종 굽이치는 삶의 굴곡을, 거친 바다를 가로지르는 항해에 빗대어 노래한다. 빛을 받아 반짝이는 해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연상시키는 - 동시에 왠지 모를 향수를 아련하게 불러일으키는 – 반짝이는 질감의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브릿지를 기점으로 낙관의 정서로 반전, 희망찬 엔딩으로 향하는 전개는 가슴 뭉클하게 아름답다. 이어지는 ‘Invisible Treasure ‘는 ‘Stunning’ 파트의 주제의식과 콘셉트를 대표하는 곡으로 영롱하게 반짝이는 신쓰 소리와 몽글몽글한 리듬이 어우러져 긍정적인 바이브로 가득한 사랑스러운 팝. 오랜 음악 동료 ‘안신애’가 작사에 힘을 보탰다. ‘to Zero’는 앨범 전체에서 가장 독특하고 파격적인 구성을 가진, 동시에 클래식한 아름다움도 함께 지닌 대작 발라드로 단연 앨범 후반부의 하이라이트라 할 것이다. 마치 오르간 소리 같은 신쓰가 영적이고 경건한 무드를 조성하는 도입부를 거쳐 은은한 현과 코러스가 더해져 애틋함을 더하는 전반부, 중첩되는 코러스와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브릿지를 기점으로 급 반전되어 유려한 피아노와 현악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클래식한 사운드의 중반부, 이윽고 종막에 이르러선 격렬하게 고조된 피아노와 현악, 일렉트로닉사운드, 코러스 등이 모두 뒤섞여 혼돈의 결말로 매조지는, 흡사 ‘James Blake’의 음악을 연상시키는 과감하고 파격적인 편곡이 인상적인 아름다운 곡. 하지만 이 강렬하게 아름다운 세계는 눈을 뜨는 순간 신기루처럼 바스러져 사라지는, 허망한 꿈이기도 하다. “Classic is timeless.” '클래식'은 시간이 지나도 결코 변치 않는 멋과 품격을 의미한다. 오로지 시퀀싱으로만 모든 사운드를 구성한 앨범의 마지막 곡 ‘CLASSIC‘은 글리치한 신쓰 소리들과 풍부한 리듬이 뒤섞여 넘실댄다. 이 모든 소리들과 어우러져 도도하게, 그리고 파워풀하게 “I’m classic”을 노래하는 선우정아의 목소리에선 거침없는 자신감과 당당함이 느껴지고 이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사랑하는 ‘선우정아’라는 존재 그 자체다. 마치 히어로 무비의 엔딩 같은, 화려하고 스펙타클한 마침표.
통속과 해학을 넘나들며 보편적 공감대에 호소하는 노랫말과 선율을 짓는 좋은 송라이터이자 탁월한 곡 해석력과 연출력을 지닌 빼어난 보컬리스트, 악곡이 지닌 맛을 다양한 음악적 장치와 아이디어를 통해 최대치로 끌어낼 줄 아는 영민한 프로듀서. 아울러 가장 통속적인 음악에 가장 의외의 파격을 선뜻 덧입힐 수 있는 실험적인 면모까지. 이 모든 것의 총체가 우리가 아는 음악가 ‘선우정아’의 모습이고 본 작 [Serenade]에서도 그런 그녀의 미덕은 여전하다. 그러나 이 작품을 통해 새삼 상기하게 되는 그녀의 가장 큰 미덕은 역시 ‘어제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일 것이다. 늘 자신의 한계를 아무렇지 않게 깨버리고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이는 아티스트.
그렇게, 선우정아는 어디에든 있다.
새로움이 있는 모든 곳에.
글: 김설탕(SUGARKi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