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지만, 함께 한다”
파제(Pa.je)는 느린 포크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2010년대 중반부터 드문드문 활동하기 시작해 느리고 천천히, 하지만 꾸준하게 곡을 발표하고 연주해왔다. 파제는 날씨와 풍경으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를 노래로 옮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음악을 듣는 일은, 무엇인가를 지그시 바라보는 일과 닮아있다. 몇 곡의 싱글을 발매하고 동향의 젊은이들이 모여 만든 컴필레이션 [인천의 포크]에 참여했다.
버둥은 뾰족한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2018년 EP [조용한 폭력 속에서]를 발표하며 데뷔한 버둥은 여성으로서의 자신 혹은 자신으로서의 여성을 음악의 주제로 삼아왔다. 어느 쪽이 되었건 간에, 이는 모두 버둥의 삶일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음악을 듣는 일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마주하는 것과 닮아있다. 여기서의 목소리란 문자 그대로의 목소리일 수도 있고,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메시지의 은유로서의 목소리일 수도 있다.
파제와 버둥은 두 사람이 두 사람의 노래를 연주하는 프로젝트다. 각자 절반쯤 곡과 가사를 썼다. 그러나 누가 곡과 가사를 써왔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둘이 같이 노래하고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일인 까닭에 둘은 각자는 원래의 위치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파제는 바라보는 일을 잠시 접어두고, 풍경 속으로 한 걸음을 뗀다. 버둥은 뾰족함을 잠시 가리고, 그만큼의 나긋함을 불어넣는다.
EP [부탁]에 수록된 모든 곡은 듀엣으로 불렸다. 그리고 모든 곡은 로맨틱한 무드에 기반해있다. 발라드라 불러도 될 것이다. 대중가요에서, 듀엣으로 불린 발라드는 대부분 남녀 간의 애타는 사랑을 그린다. 그러나 [부탁]은 그리 뜨거운 음반이 아니다. 오히려 파제와 버둥은 "같이 있지만 외로워"라 노래한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함께 견디어나가는 외로움은 [부탁]을 관통하는 테마다. 그래서 [부탁]은, 곡들을 수놓은 로맨틱한 어레인지에도, 온전한 온기보다는 따스함과 서늘함이 차례로 교차되는 이미지로 경험된다. 완전한 합일로서의 사랑보다는 얼마 간의 불안과 설렘을 동반한 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파제와 버둥에서 두 사람은 여전히 개인이다. 그럼에도 이 둘은 함께 노래를 한다. [부탁]이 어떤 미덕을 가진다면, 이는 이 음반이 어떤 사회나 시절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좋은 발라드다.
단편선 (음악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