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사운드스케이프를 다듬으며...
공간 또는 시간의 흐름에서 어느 한 자락을 기록하는 수단으로 흔히 영상매체를 꼽게 되지만, 빛의 반사로 나타나는 시각요소와 더불어 공기의 움직임으로 표현되는 울림과 소리도 못지 않은 의미와 가치를 담고 있다. 때로는 영상이 배제된 소리의 기록을 듣는 것 만으로 한없는 긴장과 회한, 그리고 상상의 무한함을 체험할 수 있다.
광주는 '빛고을' 이라는 본래의 위치와 역사가 있지만 명실공히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있어 특별한 사건과 특별한 의미를 안고 있는 도시이다. 하여 광주의 과거, 현재, 미래를 투영하는 다양한 기록물들이 있었지만 '광주의 소리'를 남기고 보존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지 않은가.
단 1명의 생존자만을 남긴 학살의 현장 주남마을의 편안한 고즈넉함이나, 전남도청 자리를 오가는 무심한 엔진 소음들은 사진으로 남겨진 그 어떤 사료 못지 않은 묵직한 잔향으로 남는다
한 때 계엄군이 주둔하여 항쟁을 진압했던 아름다운 전남대학교 교정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젊은이들의 건강한 발자욱 소리들은 과거 절규하던 학생들의 운동화 소리를 닮았을 것이다.
5-18 묘역에서는 특히 가슴이 복잡해진다. 녹음 당시 귀로는 느끼지 못했던 풀잎들의 아우성, 희미했던 별들의 함성, 처연한 바람의 노래 소리가 TAPE 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 녹음 당시 상공을 두어 차례 선회하고 지나간 헬기 소리를 들으면 이 모든 기록의 결과들이 우연하거나 단편적이지 않았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과거와 현재를 메우고 있는 공기의 흐름과 진동은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단절되지 않고 남겨져 우리 곁에 있음을 알게 해준다.
시간은 흐르고 기억은 사그라지고 모습은 변하여 눈으로는 사진으로만 과거를 볼 수 있지만, 과거의 광주를 조용히 묵시하였던 공기는 소멸하지 않고 지금도 진동하여 우리를 스치고 그 때 그 소리를 느끼게 해 주고 있음을 사운드스케이프를 통해 실감한다.
입체음향 기반의 레코딩으로 기록되었으며 헤드폰으로 들으면 더욱 생생하게 현장을 경험할 수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