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STAGE. 소리와 언어로 쌓아올린 꿈결 같은 세계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R&B 신은 자고 일어나면 새롭게 주목할 만한 신예 아티스트가 등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성장을 거듭했다. '자이언티', '크러쉬', '딘', '지소울' 등이 대중과 평단을 동시에 만족시키며 본격적인 21세기 대한민국 R&B 시대를 활짝 열어젖혔다면 뒤이어 지난 1-2년 사이 또 새롭게 등장한 아티스트들은 전에 없던 무드와 스타일, 그리고 이야기들로 독창성을 뽐내며 신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중이다. 음악팬들의 입장에서는 좋은 것들이 넘쳐나 무엇을 들을지 즐거운 고민에 빠지는 것보다 더 행복한 지경은 없을 테니 아마도 지금을 대한민국 R&B 황금시대의 시작점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그만큼 다양해졌고, 단단한 실력을 갖춘 아티스트들이 자웅을 겨루는 이 시대. 그중에서도 가장 독창적인 사운드로 귀를 사로잡는 매혹적인 아티스트를 꼽자면 단언컨대 '히피는 집시였다'이다.
첫 번째 곡 "한국화"의 무대는 '히피는 집시였다'가 어떻게 자신들의 음악을 만들어내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먼저 프로듀서 'Jflow'가 구현하는 일렉트로닉 엠비언트. 이것은 '히피는 집시였다' 음악의 설계도다. 스타일과 무드를 비롯한 이들의 모든 음악이 여기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느린 비트와 단순하게 들리는 코드지만, 이토록 깔끔하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을 자아내기 위해서 실은 얼마나 공들여 만들어낸 소리일지 그 과정의 지난함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이어서 비트를 함께 잡아나가는 베이스. 철저하게 절제하면서 기둥을 쌓아나간다. 여기에 한 음 한 음 주조하듯 공명하는 빈티지 기타. 한음씩 피킹 할 때마다, 혹은 코드를 연주할 때마다, 마치 가우디의 성당이나 공원처럼 독특한 곡선을 그리며 공간을 만들어 나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Sep'의 보컬. 서늘하고 처연하고 아름답다. 영혼을 불어 넣는다. 이렇게 완벽한 하나의 건축물이 완성된다. 멤버별로 촬영한 2분할, 4분할의 화면이 이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이번 영상은 아마 '히피는 집시였다'에게도 기념비적인 순간의 기록이 될 것만 같다.
두 번째 곡 "우리에겐"은 최근 발매한 '히피는 집시였다'의 정규 2집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이들의 어떤 곡인들 독특하지 않겠냐마는 이 노래는 정말 뭐랄까…. 음악적으로는 과감하고, 메시지적으로는 지사적이면서도 희망적이랄까? 독특하다 못해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분위기로 가득하다. 우선 굳이 얼터너티브 R&B라는 신의 요즘 맥락을 갖다 붙이는 게 무색할 정도로 장르적인 어법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비트와 시퀀싱이 흥미롭고, 응축된 에너지를 절제된 가운데서도 끝까지 밀어붙이는 현악기의 활용이 록의 폭발력 못지않다. 여기에 음악인으로서의 자의식을 자연에 빗대어 풀어낸 듯한 시적인 가사가 Sep의 의상과 더불어 마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와도 같은 지사적 풍모를 자아내는데, 한국어의 고어를 사용한 가사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음악과 결합된 노래의 정서와 서사가 모던하고 보편적이어서 놀랍다. 이는 이들의 한국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진지하고 성실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방증이다.
마지막 곡 "침대" 역시 최근 발매한 2집 앨범 [언어]에 수록된 곡으로 대한민국R&B의 황금시대를 함께 열어가는 또 한 축, '지바노프'와의 협연이 돋보이는 노래다. 'Jflow'의 몽환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일렉트로닉 엠비언트 사운드 위에서 'Sep'의 고음과 '지바노프'의 중음이 너무나 아름답게 조우한다. 덕분에 "불안감이 곧 내 머릿속을 다 채워버리고 꾸던 꿈을 깨우고 있네"라는 가사의 내용과는 반대로 이 음악이 계속되는 순간만이라도 깨지 않고 싶은, 꿈결처럼 달콤한 시간이 아쉽게도 흘러간다. 무대 위 삼각형의 꼭짓점을 바라보며 선 세 사람, 'Jflow'와 'Sep', 그리고 '지바노프'의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한국적인 R&B의 현재와 미래라는 기분 좋은 꿈을 함께 꾸게 되는 멋진 시간, 멋진 무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