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닛' [온스테이지 279번째 일리닛 (illinit)]
ONSTAGE.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래퍼
일리닛은 이미 온스테이지 영상을 통해 한 번 모습을 보인 적이 있다. 산이와 함께 했던 '나쁜놈 둘'의 영상이었다. 그는 그 영상에서 빼어난 랩 스킬과 라이브를 통해 산이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원래 '나쁜놈 둘'은 일리닛의 앨범에 산이가 피처링으로 참여한 곡이었다. 온스테이지 영상을 위해 주객의 자리를 잠시 바꾼 것뿐이었다. 이처럼 뛰어난 랩 실력을 가지고 있고, '나쁜놈 둘'처럼 좋은 곡도 가지고 있었지만 일리닛이 힙합동네에서 크게 주목 받았던 적은 그리 많지 않다. 한 장의 앨범과 한 장의 EP, 그리고 몇 개의 싱글을 발표했지만 그저 수많은 래퍼 가운데 한 명이었을 뿐이다. [Made In '98]을 내기 전까지는.
유년시절을 미국에서 보내다 중학생이 되어 한국에 온 소년은 혼란스러웠다. 환경이 달랐고 문화가 달랐고 정서가 달랐다. 그저 혼자서 조용히 힙합을 들을 뿐이었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진 환경 속에서 쉽게 적응하지 못했던 소년은 1998년 다시 미국엘 가게 된다. 1998년은 갱스타의 [Moment Of Truth], 블랙 스타의 [Mos Def & Talib Kweli Are Black Star], 아웃캐스트의 [Aquemini] 같은 힙합 명반들이 쏟아지던 해였다. 1999년, 2000년에도 그 흐름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런 흐름을 힙합의 본토에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그 순간이 정말 특별했다. 1998년은 고등학생 최재연이 아니라 랩을 하는 일리닛으로 다시 태어난 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 음악 활동을 시작했지만 그리 주목 받지는 못했다. 엠씨 스나이퍼와 연이 닿아 스나이퍼 사운드의 멤버로 활동했지만 그리 열심히 했던 것도 아니다. 2001년부터 한국에서 랩을 했지만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음반을 발표한 게 2010년이다. 2011년 정규 앨범 [Triple I]를 발표했지만 이 역시 크게 빛을 보지는 못하였다. 완전한 공백은 없었다. 해마다 남의 음반에 참여하거나 싱글을 발표했다. 하지만 집중적인 활동은 없이 세월은 흘러갔다. "정규 앨범을 만들어야 한다"는 딥플로우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일리닛이라는 새로운 자아가 태어난 1998년을 기억하며 치열하게 가사를 쓰고 곡 작업을 했다. [Made In '98]을 발표하고 평단과 마니아들 사이에서 먼저 반응이 왔다. 처음엔 음원만을 발표할 계획이었지만 앨범에 대한 반응이 좋아 CD로도 제작했다. 얼마 전 EBS [스페이스 공감] 무대에도 섰고 이렇게 온스테이지 영상의 주인공이 됐다. 좋은 앨범에 따르는 결과였다.
온스테이지에서 일리닛은 세 곡을 불렀다. 'Beer In My Backpack'과 'Half-duplex', 'Made In '98'로 이어지는 곡 순서는 흥미롭게도 앨범 트랙 리스트의 역순이다. 'Beer In My Backpack'에 담긴 현재의 이야기에서 처음 일리닛이란 이름을 정하고 힙합의 길을 택하는 처음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는 흐름은 그래서 더 의미 있어 보인다. 과한 으스댐이나 비하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가는 일리닛의 랩은 탁월하다. 오직 랩 스킬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닌 정확한 이야기 전달을 위한 발음과 완급 조절이 돋보인다. 이 재능이 그동안 너무 드러나지 않았다. 1998년이 그랬던 것처럼 [Made In '98]이 나온 2015년 역시 래퍼 일리닛이 또 한 번 새롭게 태어난 해이다. 'Beer In My Backpack'의 가사를 빌려 얘기하자면, "자, 한 잔 해 / 그 동안 수고 많이 했어." .... ....